라면 한 그릇에 외로움이 녹는 곳 서울시 마음편의점을 다녀오다

서울시 마음편의점 내부 사진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퇴근길 지하철 안, 문득 주변을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다들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고 있고, 나란히 앉아 있어도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듭니다. 사람들 속에 파묻혀 하루를 보냈는데도, 밤이 되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혼자 사는 것도,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이제는 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이 흔한 외로움을 도시의 문제로 바라보며 만든 공간이 있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이름하여 ‘서울 마음편의점’입니다.

외로움은 이제 개인의 감정이 아니다

공간에 들어서기 전, 몇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습니다. ‘같이 있어 줄 사람이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혼자 남겨진 것 같다고 느끼는가’. 이런 질문 중 세 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외로움의 신호라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4명이 평소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할 정도라고 하니, 이건 몇몇 사람의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 상태인 셈이죠.

심리학적으로 보면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와는 다릅니다. 물리적으로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정서적 연결이 없다고 느끼면 외로움은 그대로 남습니다. 반대로 혼자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고 느끼면 그 감정은 훨씬 옅어집니다. 결국 외로움의 핵심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정서적 연결의 감각인 것이죠.

상담센터도 복지관도 아닌, 편의점이라는 발상

서울 마음편의점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물건을 파는 상점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거운 분위기의 상담 기관도 아니었거든요. 직접 현장에 발을 들여보니 동네 쉼터처럼 누구든 편하게 들러 쉬어갈 수 있는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이용하는 분들이 제법 많아서, 이 공간을 필요로 했던 이들이 참 많았구나 싶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키오스크 한 대가 눈에 띄었습니다. 외로움이나 고립 정도를 스스로 체크해 볼 수 있는 장치였는데요. 관계 단절 정도나 일상 관리 상태를 몇 가지 문항으로 가볍게 진단해 볼 수 있었습니다. 진단 결과에 따라 필요하면 상담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구조였죠. “당신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하고 낙인을 찍는 대신, 편하게 들러 스스로를 점검해 보게 만든 접근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내부에는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는 코너가 가장 인기였습니다. 라면을 먹고 나서는 바로 옆 창가 빈백에 기대 풍경을 바라보며 이른바 ‘산멍’을 즐기는 분들도 보였습니다. 안마의자와 혈압 측정기, 인바디 검사기까지 갖춰져 있어서 몸 상태도 함께 살필 수 있더라고요. 라면 한 그릇 먹고 창밖을 바라보며 숨을 돌리는 그 짧은 시간이, 어쩌면 이 공간이 주는 진짜 선물 아닐까 싶었습니다.

관계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처음엔 “좋은 시설이긴 한데, 이게 외로움 해소랑 무슨 상관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공간에 잠시 머물다 보니 그 답을 알 것 같았습니다. 핵심은 바로 ‘관계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외로움을 해소하려면 흔히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 책을 읽거나 밥을 먹으며 다른 사람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사회학에서는 이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관계를 ‘약한 사회적 연결’이라고 부릅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새벽 근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말없이 같은 공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던 시간인데요. 딱히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서 타인의 온기를 느끼는 것 자체가 마음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곤 했습니다. 현장에서도 이렇게 느슨한 공간에서 시작된 인연이 마음을 터놓는 친구로 발전했다는 이용자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접점이 만드는 큰 회복

이곳은 외로움을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올 이유를 만들어주는 작은 접점 역할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고립된 사람들만 모아두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다 보니, 특정한 시선이나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죠.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이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 자체가 고립감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해줍니다. 2025년 4곳으로 시작해 현재 19곳까지 확대되었고, 누적 이용자 11만 명에 만족도가 91.3%에 달한다는 수치가 이 공간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용자가 늘어나는 만큼 공간이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있고, 아직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분들도 많다고 하니 앞으로 더 알려질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혼자가 지칠 때, 알아두면 좋은 것들

이 공간 말고도 서울시는 외로움을 호소하는 시민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24시간 운영되는 외로움 상담 서비스 ‘외로움 안녕 120’, 필요한 자원을 연결해주는 ‘서울 연결 처방’, 다양한 외부 활동으로 외로움을 풀어가는 ‘365 서울 챌린지’ 등입니다. 서울시 고립예방 플랫폼인 ‘똑똑’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참고해보셔도 좋겠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나눈 이야기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심리적, 사회적 관점에서 짚어본 것이며 개인의 상태를 진단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만약 고립감이나 외로움이 오래 지속되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라면, 혼자 견디기보다 이런 서비스나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늘어나는 1인 가구, 일상이 된 비대면 소통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요즘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느꼈던 그 헛헛함이, 어쩌면 별다른 대화 없이도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신가요. 오늘 하루, 굳이 깊은 대화가 아니어도 좋으니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잠시 머물러보는 건 어떨까요. 그 작은 시간이, 혼자라는 감각을 조용히 덜어줄지도 모릅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