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리학으로 알게 된, 유독 그 사람만 보면 화가 났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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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SNS에서 유독 신경 쓰이는 지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대학 동기였는데, 뭘 해도 은근히 자랑처럼 포장해서 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새 차를 사면 차 사진과 함께 “그냥 열심히 산 결과인 것 같아요”라는 글을 올렸고, 여행을 가면 풍경 사진 사이에 슬쩍 명품 가방을 끼워 넣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 게시물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속이 부글거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비슷한 걸 올려도 그냥 넘겼는데, 유독 그 동기만 보면 짜증이 치밀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그냥 제가 그 사람이랑 안 맞는 성격인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분석심리학을 다룬 글을 읽게 됐는데, 거기서 제 감정의 정체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유독 특정한 사람에게 비이성적으로 강한 반감이 들 때, 그건 상대의 문제라기보다 내 안에서 억눌러온 어떤 부분이 자극받은 신호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혹시 저도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걸 티 내면 안 된다고 스스로 억눌러온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냈을 때도 늘 “운이 좋았다”며 축소해서 말하는 편이었고, 그 습관을 오히려 겸손한 미덕이라고만 여겨왔습니다.

분석심리학이 말하는 페르소나와 그림자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카를 융은 인간의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고, 무의식 안에는 개인이 살면서 억압한 기억뿐 아니라 인류가 공통으로 물려받은 심리적 유산인 집단무의식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이론에서 특히 눈에 띄는 두 개념이 페르소나와 그림자입니다.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위해 겉에 쓰는 가면입니다. 직장에서 유능한 사람, 모임에서 차분한 사람처럼 상황에 맞춰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 자체는 건강한 사회적 적응의 일부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 가면과 나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할 때 생깁니다. 가면 뒤로 밀려난 감정이나 욕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그림자’라는 형태로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흥미로운 건 이 그림자가 종종 타인에게 투사된다는 점입니다. 내 안에 있지만 인정하기 싫은 부분을, 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상대에게서 발견하면 유독 강한 거부감이나 분노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명을 읽으며 제 동기를 향한 감정이 정확히 여기에 해당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잘난 척하지 마라”,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유독 많이 들으며 자랐고, 그러다 보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체를 스스로 억누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 동기는 제가 오래전에 눌러둔 그 욕구를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드러내는 사람이었고, 저는 그걸 보며 나도 모르게 오래된 감정을 건드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에는 융이 말한 ‘대립의 법칙’도 함께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 에너지는 서로 반대되는 힘 사이의 긴장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겸손함을 한쪽으로만 강하게 유지하면, 반대편에 눌려 있던 인정 욕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계속 압력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억눌린 힘은 균형을 맞추려는 방향으로 어떤 식으로든 다시 튀어나오게 됩니다. 제 경우엔 그게 그 동기를 향한 과도한 짜증으로 나타났던 셈입니다. 겉으로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반응이었지만, 사실은 제 안에서 오래 눌러온 감정이 우회로를 찾아 터져 나온 결과였습니다.

그림자를 알아차리고 나서 달라진 것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신기하게도 그 동기를 향한 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졌습니다. 여전히 그 사람의 게시물 스타일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예전처럼 이유 없이 화가 치미는 정도는 확실히 줄었습니다. 대신 저는 제 안에 있던 그 욕구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작은 성취라도 있으면 솔직하게 “나 이거 좀 뿌듯해”라고 말해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억누르기만 했던 감정을 안전한 곳에서 조금씩 꺼내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융은 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을 조화롭게 통합해가는 과정을 ‘개성화’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불편한 부분까지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다고 합니다. 저 역시 제 안의 인정 욕구를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 그것도 저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남을 향한 짜증의 방향을 조금 돌려, 제 안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은 셈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분석심리학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이며, 개인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유독 특정한 사람이나 상황에 비이성적으로 강한 반응이 든다면, 상대를 탓하기 전에 “저 사람의 어떤 모습이 내 안의 무엇을 건드리는가”를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요즘도 가끔 그 동기의 게시물을 보면 마음이 살짝 불편해지지만, 예전처럼 그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습니다. 그 질문 하나가, 오래 눌러왔던 마음의 한 조각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