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팀을 망친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조력자) 팀원의 호의를 성과로 바꾸는 리더십 울타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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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라는 감옥: 남을 돕는 호의가 권력이 되는 과정

2025년 4월 22일 화요일 오전 8시 30분.

탕비실 문을 열자마자 달콤한 헤이즐넛 향이 코를 찔렀다. 새로 이직한 한성커뮤니케이션의 싱크대 위에는 물기 하나 없이 닦인 컵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고, 캡슐 커피 머신 옆에는 ‘화요팅용 초콜릿’이라는 앙증맞은 포스트잇이 붙은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우리 팀의 박 과장이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해 해놓았을 일들이었다. 팀원들이 출근하며 “와, 누구야? 대박이다”라고 한마디씩 던질 때, 자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던 박 과장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 한구석은 고마움과 동시에 서늘한 경계심이 함께 작동했다. 5년 전 전 직장이었던 대연기획에서 만났던 김 대리가 정확히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김 대리 역시 출근하자마자 팀원들의 책상을 닦고, 남들이 기함하는 타 부서의 자잘한 잔업까지 “제가 먼저 해둘 테니 퇴근하세요”라며 도맡던 사람이었다. 초보 팀장이었던 시절의 나는 그저 조직의 축복을 만났다고만 생각했지, 그 깊은 내면에 도사린 위태로운 역동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들의 유별난 헌신 뒤에는 타인에게 거절당하고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숨어 있다. 이 공포를 감추기 위해 역설적으로 “남들은 다 나를 필요로 하지만,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거대한 자부심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자부심을 유지하느라 정작 자신이 얼마나 지치고 힘든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눈과 귀를 닫아버린다.

진짜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스스로를 언제나 ‘주기만 하는 선한 사람’의 위치에 고정하는 행위는, 상대방을 은연중에 ‘받기만 하는 정서적 빚쟁이’로 만들어 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무의식적인 심리 역동의 시작점이다. 과거의 김 대리가 정확히 그랬다. 자기가 베푼 호의와 정성에 비해 동료들의 반응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순간, 마음속에 누적된 서운함과 원망이 괴물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한계에 다다르자 김 대리의 보살핌은 팀원들을 숨 막히게 조종하는 사슬로 돌변했다. 후배들의 사소한 업무 방식까지 보살핌이라는 명목으로 일일이 간섭하려 들었고, 후배들이 부담스러워하며 거리를 두려고 하면 주변에 “내가 지를 어떻게 챙겼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소문을 내 동료들에게 정서적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처음의 순수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상대를 자기 뜻대로 구속하려는 숨 막히는 통제만 남게 된 것이다.

호의가 독이 된 전 직장 vs 호의를 자산으로 만든 현 직장

이들이 가진 폭발적인 헌신과 그 뒤에 숨은 리스크를 팀장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팀의 결말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 전 직장(대연기획): 무조건적인 희생을 방치하다가 함께 무너진 기억

당시 나는 김 대리가 자발적으로 타 부서의 잔업을 대신 처리하고, 주말에도 나와 팀원들의 멘탈을 케어하는 모습을 ‘이상적인 희생’이라며 그저 방치했다. “우리 팀의 어머니 같은 존재”라며 치켜세우기만 했을 뿐, 김 대리가 감당해야 할 업무와 감정의 선을 전혀 그어주지 않았다. 김 대리가 선의로 타 부서의 자잘한 요청을 다 받아주는 통에 팀의 공식적인 업무 일정까지 꼬이기 일쑤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연말 대형 경쟁 PT를 앞두고 피로가 극에 달하자, 김 대리는 동료들이 자신의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회의 도중 갑자기 폭발했다. “내가 그동안 당신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어떻게 살았는지 아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과거 동료들이 했던 사소한 실수와 자신이 대신 처리해 준 업무 목록을 줄줄이 읊으며 독설을 퍼부었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팀원들은 졸지에 은혜도 모르는 죄인이 되었다. 서로 눈치를 보느라 팀 내 소통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결국 그해 가장 중요했던 PT는 엉망이 된 채 낙방했다. 호의를 무제한 수용하다가 팀 전체가 동반 침몰한 순간이었다.

⚙️ 현 직장(한성커뮤니케이션): 건강한 울타리를 세워 헌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 지금

지금의 팀을 맡으면서 만난 박 과장 역시 들어오자마자 옆 자리 신입사원의 기획서를 대신 써주며 밤을 새우고 있었다. 나는 전 직장에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박 과장의 이타성을 ‘그냥 두면 바닥나는 유한한 자원’으로 정의하고 곧바로 개입했다.

박 과장이 타 부서의 무리한 데이터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 때, 나는 대화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꾸어 접근했다.

“박 과장, 지금 저 부서 일을 대신해 주는 건 당장은 착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저 팀원들이 스스로 일할 기회를 뺏는 거야. 그리고 우리 팀의 에너지를 빼놓는 결과를 낳지. 지금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야말로 저 부서와 우리 팀을 진정으로 살리는 더 큰 배려야.”

거절하는 행위 자체를 고차원의 조력으로 재정의해 준 것이다.

동시에 나는 팀장으로서 박 과장의 주관적인 서운함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시스템적으로 움직였다. 말로만 고맙다고 퉁치는 대신, 박 과장이 팀에 기여한 성과를 매주 월요일 주간 회의 때 공식적인 데이터로 명확하게 칭찬하고 넘어가 장부 채우듯 하는 인정을 충족시켜 주었다.

또한 매달 진행하는 1:1 면담에서 “남을 돕기 전에, 박 과장이 이번 달에 먼저 쉬기 위해 팀장인 나에게 요구해야 할 휴식이나 지원 리스트”를 강제로 작성하게 했다. 남을 돕는 것만큼 나를 챙기는 것도 팀원으로서의 중요한 의무임을 인지시키기 위함이었다.

결론

오늘 오후 4시, 1:1 면담을 위해 소회의실로 들어온 박 과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그의 화면에는 내가 지난달 숙제로 내준 ‘박 과장 전용 휴식 계획서’가 띄워져 있었다.

“팀장님, 말씀하신 대로 이번 주 금요일 오후 대차 대조표 마감 끝나자마자 반차 썼습니다. 그리고 이건… 다음 주에 타 부서에서 협조 요청 들어올 것 같은 건들인데, 우리 팀 스케줄 고려해서 미리 거절 메일 초안 써둔 거예요. 한 번 봐주세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노트북 화면 위로 결재 사인을 보냈다.

“잘하셨어요, 박 과장. 이렇게 선을 그어줘야 우리가 오래 같이 일합니다.”

박 과장은 “감사합니다” 하고 작게 목례를 한 뒤 노트북을 닫고 일어섰다. 자리로 돌아간 그는 이내 마우스를 쥐고 자기 몫의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탕비실 싱크대 쪽을 힐끗 돌아보거나 팀원들의 눈치를 살피는 군더더기 동작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에니어그램 2번 유형과의 진짜 갈등 FAQ

Q1. 박 과장 같은 팀원이 선의로 다른 팀원의 업무를 대신 해줬다가 나중에 서운함을 토로할 때, 팀장으로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피드백해야 하나요?

A. 가장 나쁜 대처는 “누가 달라고 했냐,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문제를 만드냐”며 선의 자체를 타박하는 것입니다. 이는 2번 유형에게 가장 큰 존재론적 상처를 주어 관계를 완전히 끝내버립니다. 이럴 때는 먼저 그가 들인 시간과 노력의 가치를 100% 인정해 주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팀을 위해 그렇게까지 신경 써준 마음은 정말 고맙고, 박 과장 덕분에 팀의 구멍이 메워진 건 사실이다”라고 마음을 먼저 채워주십시오.

그다음, 단호하게 조직의 선을 그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 과장이 대신 처리해 준다면 그 팀원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그 팀원을 망치는 길이 된다. 앞으로는 그런 상황이 오면 직접 해결해 주지 말고, 나에게 보고해서 시스템으로 풀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인정은 확실하게 해주되, 역할의 경계선을 넘는 것은 조직에 해가 된다는 프레임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Q2. 박 과장이 업무 과부하로 지쳐 보이는데도 정작 면담을 하면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팀장님 걱정 안 하셔도 돼요”라며 계속 거부합니다. 진짜 괜찮은 건가요?

A. 절대 괜찮지 않은 상태입니다. 2번 유형의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는 자신의 피로와 욕구를 무의식 밑바닥으로 밀어 넣는 ‘억압’입니다. 이들은 “나는 완벽하게 자족적이므로 타인의 도움이나 걱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자부심을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 자체를 일종의 패배나 나약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진짜 괜찮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방치하면, 머지않아 폭탄처럼 서운함이 터지게 됩니다.

이럴 때는 “진짜 괜찮냐”고 물어보는 소모적인 대화를 멈추고, 팀장이 주도하여 강제적인 휴식이나 조치를 업무 명령 형태로 부여해야 합니다. “박 과장이 안 괜찮아 보인다는 뜻이 아니라, 다음 달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우리 팀의 핵심 자산인 박 과장의 체력을 비축해 두는 게 지금 내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러니까 이번 주 금요일 오후에는 무조건 연차를 쓰고 가라”는 식으로, 휴식 자체를 ‘팀을 위한 다음 미션’으로 포장하여 전달할 때 이들은 비로소 죄책감 없이 휴식을 받아들입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