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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주간 회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올린 보고서를 팀장님이 훑어보더니 “이 부분 숫자가 좀 이상한데” 하고 툭 던지셨습니다. 사실 별거 아닌 지적이었습니다. 숫자 하나 다시 확인하면 끝날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부터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회의가 끝나고도 그 말이 계속 맴돌았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도 속이 답답했습니다. 집에 와서까지 “내가 그렇게 허술한 사람으로 보였을까” 하는 생각을 몇 시간째 붙들고 있더라고요.
돌아보면 저는 원래 이런 일에 좀 유난한 편이었습니다. 칭찬 한마디에는 하루가 붕 뜨고, 지적 한마디에는 하루가 통째로 가라앉습니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싶어서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이걸 좀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만나게 된 개념이 ‘자기 심리학’이었습니다.
자기 심리학이 말하는 ‘자기대상’이란 무엇일까
자기 심리학은 정신분석학자 하인즈 코헛이 세운 이론입니다. 프로이트 이후의 전통적인 정신분석이 인간의 욕구나 갈등을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면, 코헛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은 애초에 어떻게 단단한 자기 자신을 갖게 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답으로 제시한 개념이 ‘자기대상’입니다. 자기대상이란 나 자신의 일부처럼 기능하며 내 마음을 지탱해주는 대상을 말합니다. 갓난아기는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거나 자존감을 유지할 능력이 없어서, 부모라는 자기대상이 그 기능을 대신해줍니다. 아이가 뭔가를 해냈을 때 부모가 기뻐해 주는 것을 코헛은 ‘거울 자기대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이의 성취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 밖에도 아이가 부모를 이상화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이상화 자기대상’, 또래와의 동질감을 통해 소속감을 얻는 ‘쌍둥이 자기대상’이 있습니다. 코헛이 강조한 건, 이 자기대상 경험이 유아기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평생에 걸쳐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안 왔는데, 제 어린 시절을 하나씩 떠올려보니 조금씩 이해가 됐습니다. 저는 뭘 잘하면 부모님이 크게 반가워해주고, 뭘 못해도 크게 혼나지 않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성적표를 들고 가면 “이번엔 여기가 아쉬웠네, 근데 여기는 진짜 잘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게 코헛이 말하는 거울 자기대상의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뭘 하든 있는 그대로 반영받는 느낌, 그게 어릴 때 자연스럽게 제 안에 쌓였던 셈입니다.
문제는 그게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아무도 저를 “그래도 잘했다”는 식으로 비춰주지 않습니다. 성과만 보고, 실수만 짚습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채워지던 그 반영이 뚝 끊긴 셈이고, 저는 그 결핍을 스스로도 모른 채 계속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팀장님의 지적 한마디가 유독 아프게 다가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단순한 업무 피드백이 아니라, 오랫동안 익숙했던 반영받는 감각 자체가 흔들린 순간이었던 것이죠.
자기대상 결핍이 무너지는 게 나약해서가 아닌 이유
자기 심리학을 읽으면서 가장 위안이 됐던 부분은, 이런 반응이 성격이 유별나거나 멘탈이 약해서가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코헛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런 반영과 지지를 계속 필요로 한다고 봤습니다. 어릴 때 한 번 채워지면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에 걸쳐 조금씩 다시 채워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른 후반인 저도 여전히 누군가로부터 “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필요로 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걸 알고 나니 그날 회의실에서의 일이 조금 다르게 보이더군요. 저는 그냥 숫자 하나 틀렸다고 혼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았던 부분이 순간적으로 건드려진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할까” 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걸 멈추고, “아, 지금 내가 반영받고 싶은 상태구나” 하고 그냥 알아차리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원인을 알고 나니 같은 상황이 다시 와도 예전만큼 오래 붙들려 있지 않게 됐습니다.
요즘 제가 실제로 해보고 있는 것들
거창한 건 아니고, 몇 가지 작은 걸 바꿔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루에 한 번은 저 스스로에게 오늘 잘한 일 한 가지를 짚어주는 것입니다. 남이 안 알아줘도 제가 먼저 알아주면 그 결핍이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며칠 해보니 퇴근길 기분이 확실히 달라지더군요.
둘은, 아내나 오래된 친구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그날 바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전엔 혼자 삭이는 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게 마음을 더 오래 무겁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 제 얘기를 듣고 “그럴 만했네” 한마디만 해줘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더라고요.
셋은, 반대로 제가 누군가에게 그런 반영을 해주는 쪽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동료가 뭔가 해냈을 때 지나치듯 넘기지 않고 한마디라도 알아봐 주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고 나면 제 마음도 같이 채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자기 심리학이라는 이론을 저의 경험에 비춰 정리해본 것이며, 심리 상담이나 진단을 대신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만약 이런 흔들림이 일상생활을 힘들게 할 정도로 자주, 오래 반복된다면 혼자 끌어안고 있기보다 상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편이 훨씬 빠르고 확실한 방법일 겁니다.
그날 회의실에서 느꼈던 그 무너지는 기분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예전부터 채워져 있던 무언가가 잠깐 흔들린 것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며칠씩 곱씹었을 일도 요즘은 하루 이틀이면 털고 넘어가게 됐습니다. 오늘 혹시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셨다면, 자책하기 전에 한번쯤 “내가 지금 뭘 필요로 하고 있나”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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