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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동네 조기축구회에 가입했을 때, 총무를 맡고 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회비 납부일을 하루라도 넘기면 어김없이 문자를 보냈고, 경기 시작 시간에 5분만 늦어도 다음 명단에서 제외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빡빡하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몇몇은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저도 속으로 “그냥 취미로 하는 축구인데 왜 저렇게 각을 세우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그 동호회는 동네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는 모임 중 하나가 됐습니다. 회비가 밀려서 흐지부지된 다른 팀들과 달리, 저희 팀은 유니폼도 새로 맞추고 매년 겨울 전지훈련까지 다녀올 정도로 탄탄하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그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너 그렇게 빡빡하게 굴 때 서운하지 않았어?” 친구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규칙 안 지키면 결국 이 모임 자체가 없어지는 거야. 나는 다들 이 모임을 오래 다니길 바라서 그런 거였어.” 저는 그 말을 듣고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나중에 MBTI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친구가 ESTJ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ESTJ는 왜 규칙을 지키는 게 곧 애정 표현일까
곁에서 오래 지켜본 바로는, 그 친구에게는 ‘질서와 시스템’이 조직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MBTI에서는 ESTJ를 외향 사고가 가장 앞서는 유형으로 설명합니다. 외향 사고는 외부 환경을 논리적으로 조직화하고 효율적인 체계를 세우는 데 강한 기능이라고 합니다. 그다음으로 강하게 작동하는 게 내향 감각인데, 이는 과거에 검증된 방식과 경험을 신뢰하는 기능이라고 합니다. 이 두 기능이 결합하면, 눈앞의 무질서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하고 어떻게든 체계를 세워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친구가 회비와 시간 규칙에 그렇게 엄격했던 것도, 결국 이 모임이 오래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나름의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흥미로웠던 건, 이 친구가 규칙을 강조하는 방식이 감정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우선하는 데서 나온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위로의 말보다 먼저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라는 질문이 먼저 나와서 가끔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진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서서 해결책을 찾아주는 사람도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감정을 함께 느껴주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습니다.
한 번은 팀 유니폼을 새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이 친구가 처음엔 “굳이 지금 바꿀 필요가 있나”라며 반대했습니다. 다들 그냥 고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예산과 기존 유니폼의 상태를 이미 꼼꼼히 따져본 결과였습니다. 다른 팀원이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이번 시즌 참가 인원이 늘어서 교체가 필요하다”고 수치를 들어 설명하자, 그 친구는 곧바로 태도를 바꿔 누구보다 빠르게 새 유니폼 발주를 진행했습니다. 근거 없는 변화에는 신중했지만, 명확한 이유가 확인되면 오히려 가장 앞장서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처음엔 불편했던 규칙, 나중엔 신뢰가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빡빡하다고 불평하던 사람들이, 회비가 투명하게 관리되고 경기 일정이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오히려 그 친구를 가장 신뢰하게 됐습니다. 한 번은 다른 팀원이 급하게 사정이 생겨 회비를 늦게 낸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미리 사정을 말해준 것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줬습니다. 무조건 원칙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명확한 이유와 설명이 있으면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습니다.
곁에서 알게 된 소통법
이 친구와 소통할 때는 방식을 조금 다르게 하면 훨씬 편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냥 좀 힘들어서 그래”라는 식으로 감정만 이야기하면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는데, “이런 사정이 있어서 이번 주는 참석이 어렵다”처럼 구체적인 이유를 먼저 말하면 훨씬 빠르고 흔쾌히 이해해줬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감정적인 호소보다 명확한 정보와 이유가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는 걸 알고 난 뒤로, 저도 부탁이나 양해를 구할 때 방식을 바꾸게 됐습니다.
다른 팀원 한 명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예전엔 그 친구에게 뭔가 부탁할 때마다 왠지 위축됐는데, 요령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가장 편하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고 했습니다. “이 친구는 감정으로 설득하려 하면 안 통하는데, 이유만 명확하면 제일 빨리 움직여주는 사람”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사람마다 마음을 여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이 동호회를 통해 여러 번 확인하게 됐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한 사람의 사례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MBTI는 개인의 성격을 완전히 설명하는 진단 도구가 아니며, 같은 ESTJ라도 자라온 환경이나 관계의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혹시 주변에 원칙에 유독 엄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엄격함이 냉정함이 아니라 그 모임이나 관계를 오래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걸 한번 떠올려봐 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요즘도 그 친구 덕분에 회비를 미루지 않고 제날짜에 내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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