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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식탁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한 말만 남았습니다.
“아빠는 왜 화내?”
저는 반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빠 화 안 냈는데?”
그러자 아들이 저를 빤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목소리 커졌잖아.”
화를 안 냈다고 말한 순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없었습니다.
억울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목소리가 커졌다는 걸 그 순간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젓가락으로 장난을 쳤고, 제가 두 번 말했고, 세 번째에 뭔가가 달라졌던 것 같은데 저한테는 그 경계가 안 느껴졌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것도 나중에야 떠올랐습니다. 평소 같으면 “왜 그래” 하고 한마디 했을 텐데, 그날은 그냥 반찬을 옮겨놓기만 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는 지금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더 마음에 걸린 건 아이의 말투였습니다. 따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원망도 아니었고요. 그냥 궁금해서 묻는 얼굴이었습니다. 아빠가 왜 저러는지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 여덟 살짜리가 상황을 저보다 정확하게 읽고 있었던 겁니다.
화는 왜 정작 본인 눈에만 안 보일까
집에 와서 이 부분을 좀 찾아봤습니다.
화가 날 때 몸이 먼저 움직인다고 합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 톤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대부분 자동으로 일어나서, 정작 본인은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설명됩니다.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뚜렷한 신호가 안에서는 잘 안 잡히는 겁니다.
반대로 아이는 말의 내용보다 톤과 표정으로 상황을 읽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어떤 소리로 말했는지가 먼저 들어오는 거죠. 그러니 아이가 저보다 먼저 알아차린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기억했고, 아이는 제가 어떻게 말했는지를 기억한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었습니다. 화는 대체로 표면에 있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 아래에 피로나 불안, 무력감, 부끄러움 같은 것이 깔려 있고, 화는 그것들이 밖으로 나올 때 입는 옷에 가깝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만 들여다보면 원인을 못 찾습니다. 젓가락 장난이 원인이 아니었던 것처럼요.
흥미로웠던 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강도가 다소 누그러진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짜증 난다”가 아니라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라고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달라진다는 겁니다. 저는 이걸 읽고 나서야 제가 그동안 제 감정에 이름을 붙여본 적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기분이 나쁘면 그냥 기분이 나빴고, 그 상태로 저녁 식탁에 앉았습니다.
화 아래에 깔려 있던 것
그날을 되짚어봤습니다.
회사에서 오후 내내 진도가 안 나갔고, 퇴근길에도 그 생각을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주 내내 새벽에 깨서 다시 못 자고 있었습니다. 요즘 제 수면이 어떤 상태인지는 얼마 전에 따로 적은 적이 있는데, 그게 이 저녁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물론 잠을 못 자서 화를 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날따라 일이 안 풀린 탓일 수도 있고, 그냥 제 인내심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습니다. 그 화의 방아쇠는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 아이는 그냥 젓가락을 들고 있었을 뿐인데, 제 하루가 그 젓가락 위로 쏟아진 겁니다.
이걸 알아차린 게 그날 제일 불편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이한테 미안한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불편함이었습니다. 미안한 건 사과하면 되는데, 이건 사과할 데가 없었거든요. 제 하루를 제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여덟 살한테 들킨 셈이니까요.
화를 다루는 방식을 바꾸고 나서
예전에는 화가 올라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한테 안 좋은 모습 보이지 말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아빠가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 이유도 모른 채로요. 요즘은 나가기 전에 한마디 하고 나갑니다. “아빠 지금 기분이 좀 안 좋아서 잠깐 있다 올게. 너 때문 아니야.” 이 말을 붙였더니 아이가 문 앞에 와서 서성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화 안 냈어”라고 부인하는 것도 그만뒀습니다. 아이가 목소리 커졌다고 하면 이제는 인정합니다. “맞네, 아빠 목소리 커졌네. 미안해.” 처음엔 이게 지는 것 같아서 어색했습니다. 아빠 체면이 안 서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몇 번 해보니 반대였습니다.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 대화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아이가 “괜찮아” 하고 넘어가버리거든요. 오히려 부인할 때 대화가 길어지고 험해졌습니다.
그리고 화가 났던 시간을 며칠 적어봤습니다. 거창한 기록은 아니고 휴대폰 메모에 날짜와 시각만 남기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치를 모아놓고 보니 패턴이 보였습니다. 대부분 저녁 일곱 시에서 아홉 시 사이, 그리고 전날 잠을 설친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제가 어떤 상태였느냐가 훨씬 선명한 조건이었습니다. 요즘은 그 시간대에 스스로 한 박자 늦추려고 합니다.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아이의 질문이 더 정확했습니다
아직도 화를 냅니다. 지난주에도 한 번 그랬고요. 달라진 건 화를 안 낸다는 게 아니라,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린다는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다 끝나고 잠자리에 누워서야 ‘아까 좀 심했나’ 싶었는데, 요즘은 목소리가 올라가는 중에 한 번씩 걸립니다. 그 차이가 크지 않아 보여도 저한테는 꽤 큽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목소리를 높이려다 멈추고 “아빠 지금 화나려고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잠깐 저를 보더니 “알았어” 하고 젓가락을 내려놨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렇게 간단할 일을 저는 몇 년 동안 소리로 해결하려 했던 겁니다.
그날 아이가 던진 건 사실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문장 하나에 며칠을 걸려 넘어졌습니다. 어른들끼리는 아무도 저한테 그렇게 안 물어보거든요. 목소리가 커졌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 왜 화가 났느냐고 정면으로 묻지 않습니다. 여덟 살만 그렇게 묻습니다.
이 글은 제가 겪은 일을 정리한 내용이며, 저는 심리상담사도 아동 전문가도 아닙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니 제 방법을 정답으로 삼지 마시고, 화를 조절하기 어려워 오래 힘드시거나 그것이 가족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끼신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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