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상담 1388, 부모도 걸 수 있다는 걸 형은 몰랐습니다

청소년 상담 1388 섬네일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가족 모임이 끝나고 주차장까지 형이 따라 나왔습니다.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는데 차 문을 열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 심리 쪽 글 쓴다고 했지.”

조카 이야기였습니다. 중학생인데 요즘 학교 얘기를 통 안 한다고 했습니다. 방문을 닫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물어보면 괜찮다고만 한다고요. 형은 이 말을 하면서 계속 차 열쇠를 만지작거렸습니다.

마지막에 한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어디 물어볼 데가 없더라.”

부모가 물어볼 데가 없다는 말

저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정보가 없는 시대도 아닌데요.

그런데 형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검색을 하면 나오는 건 대체로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아이가 직접 도움을 청하는 창구고, 다른 하나는 유료 상담센터 광고입니다. 아이가 상담을 원하는 상태가 아니고 병원까지 갈 일인지도 모르겠는 부모가, 그 중간에서 물어볼 데가 마땅치 않은 겁니다.

형이 필요했던 건 상담센터 예약이 아니었습니다. 이게 걱정할 일인지 아닌지를 누군가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 묻기도 어렵습니다. 친척이나 동네 학부모에게 꺼내면 그 순간부터 조카 이야기가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니까요. 형이 저에게 물어본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가족 중에 이런 걸 좀 찾아볼 만한 사람이 저뿐이었던 거죠. 그런데 정작 저도 그 자리에서는 아무 대답을 못 했습니다.

청소년상담 1388은 부모도 이용 대상입니다

찾아보니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번호였습니다.

청소년전화 1388입니다. 저도 이 번호를 알고는 있었는데, 청소년이 직접 거는 번호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학교 앞에 붙은 스티커나 교복 안에 넣어주는 카드에 적힌 번호 말입니다.

그런데 안내를 읽어보니 이용 대상이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9세에서 24세 청소년, 그리고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와 보호자. 부모가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게 아니라 명시적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365일 24시간 운영이고 무료입니다. 형이 필요했던 건 정확히 이거였는데, 형도 저도 몰랐습니다.

생각해보면 홍보가 늘 아이들 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학교 게시판, 교복 주머니에 넣는 카드, 청소년 대상 캠페인. 다 맞는 방향인데, 그러다 보니 부모는 자기가 이 번호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부터도 이십 년 가까이 이 번호를 알면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1388에 닿는 네 가지 방법

방법이 넷인데 여기서 하나 짚어둘 게 있습니다.

전화는 일반전화로 국번 없이 1388을 누르면 됩니다. 그런데 휴대전화로 걸 때는 지역번호를 먼저 눌러야 합니다. 서울이면 02-1388, 세종이면 044-1388 이런 식입니다. 이걸 모르고 휴대폰에서 그냥 1388만 눌렀다가 연결이 안 돼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역번호를 붙이면 그 지역 상담센터로 이어지는 구조라, 사는 지역 번호를 쓰시면 됩니다.

문자는 1388로 메시지를 보내면 됩니다. 전화로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아이 옆에서 통화하기 곤란할 때 쓸 만합니다.

카카오톡은 채널에서 “청소년상담1388″을 찾아 추가한 뒤 대화하면 됩니다.

온라인은 청소년1388 홈페이지에 상담실이 있습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상담사가 답을 주는 방식도 있어서, 길게 정리해서 물어보고 싶을 때 맞습니다.

형에게는 문자나 카카오톡부터 해보라고 했습니다. 전화는 말을 꺼내는 첫 문장이 어렵거든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는 글로 쓰는 편이 낫고, 쓰다 보면 정리가 되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형은 문자로 먼저 시작했다고 합니다.

부모가 먼저 여는 일에 대하여

형에게 알려주기 전에 이게 왜 필요한지 좀 찾아봤습니다.

아이가 힘들 때 스스로 도움을 청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다고 합니다. 이유가 여럿인데, 자기 상태를 말로 옮길 언어가 아직 부족한 것이 하나고, 말했다가 부모가 놀라거나 화를 낼까 봐 삼키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괜찮다고 하는 아이도 많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저도 좀 찔렸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아들이 물어봐서야 알았던 일을 적은 적이 있는데, 저한테는 안 보이던 게 아이한테는 진작 보이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아이가 입을 닫는 이유가 아이 쪽에만 있는 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괜찮다”는 대답을 아이의 상태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다는 뜻일 수도 있고, 지금은 말할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두 가지가 똑같아 보입니다.

부모가 먼저 물어보는 게 의미 있는 건 이 지점입니다. 아이를 상담에 밀어 넣기 전에, 지금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부모가 먼저 감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이 입장에서도, 자기가 끌려가는 것과 부모가 먼저 알아보고 오는 것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전문가 개입이 필요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부모가 혼자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판단을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런 창구가 있는 이유일 겁니다.

형에게 알려주고 나서

번호와 이용 대상을 정리해서 형에게 보냈습니다. 형은 “이런 게 있었냐”고 했습니다. 저도 이번에 알았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에 전화가 왔는데, 걸어봤다고 했습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통화 끝에 형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단 내가 뭘 하면 안 되는지를 알겠더라.”

조카가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이 글은 해결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형이 혼자 안고 있던 걸 어딘가에 한 번 꺼내놨다는 것, 지금은 그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별것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차장에서 형이 열쇠를 만지작거리던 그 몇 초 동안, 형은 이 얘기를 꺼낼지 말지를 재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해법이 아니라 물어봐도 되는 곳 하나입니다.

혹시 비슷한 상황이시라면, 아이를 설득하는 것보다 이쪽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무료고, 밤에도 열려 있고, 부모가 걸어도 되는 번호입니다.

이 밖에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는 제도들은 무료·저가로 상담받는 방법 총정리에 모아두었습니다.

이 글은 제가 곁에서 지켜본 일과 공개된 자료를 정리한 내용이며, 저는 심리상담사도 청소년 전문가도 아닙니다. 아이의 상태는 사례마다 다르므로 여기 적힌 내용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마시고, 자녀가 지금 위험한 상황이라고 느껴지신다면 1388이나 가까운 의료기관에 즉시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추가로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는 다른 제도들은 무료·저가로 상담받는 방법 총정리에 모아두었습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