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도 할 일도 없는 토요일 아침, 저는 십 분을 못 앉아 있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휴식 섬네일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토요일 아침 일곱 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알람은 맞춰두지 않았습니다. 요즘 주말에도 일찍 깨는 편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았고요.

아내도 아이들도 자고 있었습니다. 커피를 내리고 거실 소파에 앉았습니다.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고, 그 주에 처음으로 아무 일정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십 분을 못 앉아 있었습니다.

십 분 동안 제가 한 일

정확히 뭘 했는지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휴대폰을 들어 메일함을 열었습니다. 새 메일은 없었습니다. 그다음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습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란다에 나가 화분을 들여다봤습니다. 물 준 지 얼마 안 된 걸 알면서요.

그러고는 결국 노트북을 켰습니다. 급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뭔가 열어둘 게 필요했습니다.

노트북 화면이 켜지는 순간 마음이 좀 놓이더군요. 그게 이상했습니다. 저는 쉬려고 앉았는데, 일할 준비를 하고 나서야 편안해졌습니다.

그날 실제로 노트북으로 한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메일을 두어 개 읽고 폴더를 정리하다 말았습니다. 열어두기만 하면 됐던 겁니다. 화면이 켜져 있으면 지금 이 시간이 노는 시간이 아니라는 게 성립하니까요. 알리바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휴식 앞에서 자격 심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날 아침을 되짚어보다가 알았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십 분 동안 제 머릿속에서 뭐가 돌아가고 있었냐면, 계산이었습니다.

이번 주에 야근을 세 번 했으니까. 지난주에는 주말에도 일했으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식이었습니다.

저는 쉬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쉬어도 되는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충분히 모이면 그때 앉을 수 있는 구조였던 겁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의 계산은 결론이 안 났습니다. 야근 세 번이 소파에 앉을 자격으로 충분한지 저도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노트북을 켠 겁니다. 그게 계산을 끝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왜 쉴 때 오히려 불안해질까

찾아보니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오래 긴장 상태로 지내다가 그것이 갑자기 풀릴 때,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먼저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계속 켜져 있는 데 익숙해져 있으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온다는 겁니다. 주말이나 휴가 첫날에 이유 없이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뜨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되곤 합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칩니다. 해야 할 일 목록이 있으면 우리는 자기가 잘 지내고 있는지를 그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몇 개를 지웠는지 세면 되니까요. 그런데 목록이 사라지면 그 기준도 같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간이 잘 보내지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 방법이 없어집니다. 그 모호함이 불안으로 느껴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불안의 원인이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없어서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읽으면서 좀 뜨끔했습니다. 저는 제가 잘 지내고 있는지를 오랫동안 처리한 일의 개수로 확인해온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는 아침이 편할 리가 없었죠.

그러고 보니 예전에 동창회 초대를 거절하고 혼자 저녁을 보낸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는 쉬는 게 편했습니다. 차이가 뭔가 생각해보니 그날은 제가 뭔가를 거절해서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대가를 치렀으니 자격이 생긴 셈이죠. 그런데 토요일 아침은 그냥 주어진 시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얻은 시간이라 도리어 앉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주말 목록을 만들지 않기로 한 뒤

예전에는 금요일 밤에 주말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청소, 서류 정리, 미뤄둔 연락, 운동. 다섯 개쯤 적어두고 토요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섯 개 중 셋을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못 한 두 개가 남아서요. 요즘은 목록을 아예 안 만듭니다. 대신 하나만 정합니다. 그거 하나 하면 그 주말은 성공입니다. 나머지 시간에 뭘 하든 상관없어지니까 이상하게 더 많이 하게 되더군요.

두 번째로 바꾼 건 계산을 알아차리면 멈추는 겁니다. “이번 주에 얼마나 했으니까”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시작되면, 거기서 끊습니다. 이유 없이 그냥 앉아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처음엔 정말 5분도 힘들었습니다. 손이 계속 뭔가를 찾았고, 그게 없으면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이십 분쯤 됩니다. 대단한 진전은 아닌데, 앉아 있는 동안 계산을 안 한다는 건 확실히 다릅니다.

세 번째는 좀 우연이었습니다. 어느 주말에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토요일 아침에 보통 뭐 하냐고요. 아내가 별생각 없이 답했습니다. “그냥 누워 있어.” 저는 그다음 질문을 하려다 말았습니다. 누워서 뭘 하느냐고 물으려던 참이었거든요. 그 질문이 나오려는 것 자체가 제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누워 있는 게 그냥 누워 있는 거였습니다. 저한테는 누워서 뭘 하는지가 있어야 성립하는 일이었고요. 같은 집에서 같은 토요일 아침을 보내면서 우리 둘이 전혀 다른 걸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노트북을 켰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잘 안 됩니다. 이 글도 토요일 아침에 쓰고 있으니까요. 결국 또 뭔가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예전과 하나 다른 건,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지는 안다는 겁니다. 쉬지 못하는 것과 쉬지 않기로 한 것은 다르니까요. 오늘은 후자였으면 좋겠는데, 아마 전자에 가까울 겁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나아졌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그래도 주말 아침을 알차게 썼다”고 정리했을 겁니다. 지금은 그 문장이 떠오르면 좀 우스워집니다. 알차게 쓰려고 앉은 게 아니었으니까요.

혹시 주말 아침이 이상하게 불편하시다면, 오늘 하루쯤은 계산을 멈춰보셔도 좋겠습니다. 쉬는 데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다들 아는데, 몸이 아는 건 또 다른 문제더군요.

이 글은 제가 겪은 일을 정리한 내용이며,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여기 나온 이야기를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지 마시고,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상태가 오래 이어지거나 일상에 지장이 있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보시길 권합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