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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너무 붙어 지내서 그런가 봐.” 대학 시절 함께 자취하던 룸메이트가 다투고 난 뒤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들고, 서로의 일상을 속속들이 알던 사이였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가까운 게 마냥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걸로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설거지 순서, 방 청소 주기, 심지어 텔레비전 채널까지 별것 아닌 일로 날을 세우곤 했습니다. 한 번은 그냥 리모컨을 누가 먼저 잡느냐를 두고 삼십 분 넘게 냉전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신기했던 건, 잠깐 떨어져 지낼 때는 오히려 서로가 그리웠다는 점이었습니다. 방학 때 각자 본가에 내려가 있으면 매일 연락하며 빨리 보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다시 같이 살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부딪혔습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가까워지면 부딪히는 현실 사이에서 계속 오락가락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져 찾아보다가 알게 된 개념이 ‘고슴도치 딜레마’였습니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왜 가까울수록 아플까
고슴도치 딜레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남긴 우화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추운 겨울, 고슴도치 여러 마리가 온기를 나누려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너무 가까이 붙으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파합니다. 그래서 다시 떨어지면 이번엔 추위가 밀려옵니다. 결국 고슴도치들은 서로를 찌르지 않으면서도 온기는 나눌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계속 찾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우화를 인간관계, 특히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친밀감과 자율성 사이의 긴장을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결되고 싶은 욕구와 동시에 자기만의 공간을 지키고 싶은 욕구를 함께 갖고 있는데,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이 두 욕구가 충돌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저와 룸메이트도 정확히 이 패턴이었습니다. 온기(친밀감)를 원해서 붙어살았지만, 그만큼 서로의 가시(경계를 침범하는 사소한 습관들)에 자주 찔렸던 셈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적당한 거리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애착 유형에 따라 어떤 사람은 조금만 멀어져도 불안해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만 가까워져도 답답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는 돌이켜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꽤 필요한 편이었는데, 룸메이트는 그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에서 더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었습니다. 서로 필요한 온기의 양 자체가 달랐던 셈인데, 그걸 모른 채 같은 기준으로 서로를 맞추려다 보니 계속 어긋났던 것 같습니다.
거리를 조절하는 법을 몰랐던 시절
돌이켜보면 그 시절 저희는 ‘거리를 조절한다’는 개념 자체를 몰랐습니다. 붙어 있으면 무조건 좋은 거고, 떨어지면 서운한 거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부딪히면 무조건 더 가까이 다가가려 애쓰거나, 반대로 완전히 등을 돌리는 극단적인 반응만 오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강한 관계는 이 중간 어딘가의 적당한 거리를 계속 미세하게 조정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합니다. 한 번 정해지면 끝나는 게 아니라, 상황과 시기에 따라 계속 조절이 필요한 살아있는 균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곁에서 다시 찾은 적당한 거리
시간이 지나 각자 취업하고 따로 살게 된 뒤로, 저희는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지금이, 매일 붙어살던 그때보다 훨씬 편안합니다.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하면 룸메이트도 “그때는 거리를 두는 법을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서로 연락이 뜸해도 서운해하기보다 “지금 각자 바쁜가 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붙어 있지 않아도 여전히 온기는 느껴지니까요.
결혼한 뒤로는 이 원리를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신혼 초에는 모든 걸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각자의 취미 시간까지 함께하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사소한 걸로 부딪히는 날이 늘었습니다. 지금은 주말 중 반나절 정도는 각자 원하는 걸 하고 나머지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신기하게도 그 거리가 생기고 나서 오히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와 겪었던 그 딜레마를, 결혼 생활에서 또 한 번 겪고 또 한 번 배운 셈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입니다. 가까운 사람과 자꾸 부딪힌다면, 그건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거리가 서로에게 조금 가까울 뿐일 수 있습니다. 무조건 더 가까워지려 애쓰기보다, 서로에게 맞는 편안한 거리를 함께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는 요즘도 누군가와 자주 부딪힐 때면, 그 옛날 리모컨 냉전을 떠올리며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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