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심리를 알고 나서 이해한, 아내와 저의 극과 극인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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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트레스가 심할 때마다 이상하게 공포영화를 찾습니다. 특히 마감이 몰리거나 머릿속이 복잡한 주에는, 잔인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한 편 보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개운해지는 걸 느낍니다. 반면 아내는 정반대입니다. 공포영화 포스터만 봐도 화들짝 놀라고, 어쩌다 예고편이라도 스치듯 보면 그날 밤은 불을 켜놓고 자야 할 정도입니다. 한번은 제가 무심코 틀어놓은 예고편 소리에 아내가 부엌에서 뛰쳐나온 적도 있었는데, 그날 저녁 내내 저를 원망 섞인 눈으로 쳐다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같은 영화를 봐도 저는 후련하고 아내는 며칠씩 잔상에 시달리는 걸 보며, 도대체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른지 궁금해서 찾아보다 알게 된 게 ‘공포영화 심리’였습니다.

무서운데 왜 오히려 후련해질까

공포영화를 볼 때 우리 뇌에서는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화면에서 위협적인 장면이 나오면 뇌 속 편도체가 먼저 반응해서 몸에 긴장 신호를 보냅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 땀이 나는 건, 실제 위험을 마주했을 때와 똑같은 신체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긴장이 극에 달하면, 뇌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엔도르핀과 도파민 같은 호르몬을 함께 분비한다고 합니다. 결국 무서움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몸은 긴장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제가 왜 스트레스 받을 때 공포영화를 찾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극도의 긴장과 그 뒤에 오는 해소감이,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안전하다는 확신’이라고 합니다. 내가 있는 곳이 실제로는 절대 위험할 수 없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걸 이성이 알고 있기 때문에, 몸은 긴장해도 마음은 그 자극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소파에 편하게 앉아 화면 속 위협을 지켜보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라는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 놀이공원에 갔을 때 이 차이를 더 확실히 실감했습니다. 저는 혼자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 오히려 개운한 기분으로 다음 놀이기구까지 신나게 탔는데, 아내는 입구에서부터 손사래를 치며 절대 못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저 혼자 다녀왔는데, 나오자마자 웃으면서 “생각보다 재밌었다”고 말하는 저를 보며 아내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성격 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정확히 뇌가 자극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였던 셈입니다.

같은 자극인데 왜 즐거움과 고통으로 갈릴까

그렇다면 아내는 왜 저와 이렇게 다를까요. 찾아보니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극에 반응하는 뇌의 성향 자체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긴장 속에서 유독 큰 쾌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같은 자극을 그냥 불쾌한 위협으로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상황을 판단하는 인지적 태도의 차이라고 합니다. 저는 무서운 장면을 보면서도 머릿속 한편에서 “이건 가짜다”라는 통제 장치가 계속 작동해서 몸의 긴장을 유희로 바꿀 수 있는 반면, 아내는 그 통제 장치보다 경보 장치가 훨씬 예민하게 작동해서 가짜 상황에서도 진짜 위협을 느낀 것처럼 반응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연구도 하나 찾았습니다. 한 대학 연구팀이 실제 공포 체험관을 찾은 사람들의 심박수와 반응을 분석했는데, 즐거움과 공포의 관계가 정확히 역U자 곡선을 그린다는 걸 밝혀냈다고 합니다. 자극이 너무 약하면 지루해서 재미가 없고, 반대로 너무 강해서 통제력을 잃을 정도가 되면 즐거움도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각자가 편안하게 느끼는 공포의 적정선, 이른바 ‘스위트 스팟’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꽤 넓은 범위에서 그 스위트 스팟을 즐기는 편이고, 아내는 그 범위가 훨씬 좁은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곁에서 맞춰가고 있는 것들

이걸 알고 나서, 저는 더 이상 아내에게 공포영화를 함께 보자고 무리하게 권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드라마나 예능을 함께 보는 시간을 늘렸습니다. 반대로 제가 혼자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는 헤드폰을 끼고 방에서 조용히 즐기는 식으로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그 정도가 뭐가 무섭다고”라며 아내를 놀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게 단순한 겁쟁이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뇌의 반응 방식 차이라는 걸 알고 나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더 배운 게 있습니다. 저도 며칠 연속으로 잔인한 영화만 몰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오히려 밤에 사소한 소리에도 예민해지고 잠을 설쳤습니다. 아무리 저에게 잘 맞는 자극이라도 너무 반복되면 뇌가 지쳐버린다는 걸 그때 알게 됐습니다. 그 뒤로는 무서운 영화를 본 날에는 꼭 밝고 가벼운 영상을 하나 더 보고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저에게 맞는 적당한 양을 찾는 것도, 결국 스스로를 잘 아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공포영화 심리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입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누군가는 짜릿함을, 누군가는 순수한 고통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혹시 주변에 유독 무서운 걸 못 견디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뇌가 자극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걸 한번 떠올려봐 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이제 아내에게 무서운 장면 얘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이 얘기 들어도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작은 배려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일상이 힘들 만큼 어려움이 이어진다면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