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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저는 동네 형 동생들과 매주 만나 술자리를 갖는 모임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친목 모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만날 때마다 회사 욕, 정치 얘기, 서로의 신세 한탄만 반복하는 자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물들어서, 만나면 저조차 습관처럼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더군요. 체중은 꾸준히 늘었고, 주말이면 숙취로 하루를 통째로 날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때는 그게 그냥 제 나이대에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회사 동료의 권유로 동네 러닝크루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처음엔 그냥 살이나 빼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몇 달 만에 제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크루원들은 만나면 다음 대회 준비나 새로운 러닝화, 회복을 위한 식단 이야기를 나눴고, 저도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에 스며들었습니다. 술자리는 점점 줄었고, 대신 새벽 러닝 약속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반년 만에 체중이 줄었고, 신기하게도 회사 업무에 대한 태도까지 달라졌습니다. 도대체 어울리는 사람이 바뀌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삶 전체가 달라졌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다 알게 된 개념이 ‘유유상종 심리학’이었습니다.
유유상종은 왜 이렇게 강력하게 작동할까
유유상종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이나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 더 강하게 끌린다고 설명합니다. 이걸 유사성 효과라고 부르는데, 한 심리학자의 실험에서는 낯선 사람이라도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면 호감도가 눈에 띄게 올라간다는 게 확인됐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엔 그저 우연히 러닝크루에 들어갔을 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서 저와 비슷한 생활 리듬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이 현상의 뿌리에는 뇌가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을 안전하게 여기는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나와 닮은 점을 발견하면, 뇌 속에서 경계 신호를 보내던 부위가 서서히 안전 신호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측할 수 있는 대상일수록 뇌가 덜 긴장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예전 술자리 모임도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비슷하게 불평하고 비슷하게 하루를 흘려보내다 보니, 그 안에서는 편안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편안함이 저를 조금씩 무기력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당신은 가장 많이 어울리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처음엔 그냥 흔한 자기계발 문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을 돌아보니 정말 그 말 그대로였습니다. 술자리 모임에 있을 때 저는 그 무리의 평균적인 무기력함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고, 러닝크루에 들어간 뒤로는 그 무리의 평균적인 활력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대단한 결심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어울리는 사람들의 평균값에 자연스럽게 수렴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감정은 왜 이렇게 쉽게 옮아갈까
찾아보니 감정이 사람 사이에서 전염되는 정도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합니다. 특히 불평이나 무기력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훨씬 강하고 빠르게 주변에 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 술자리에서 저는 늘 “오늘은 그냥 가볍게 한잔만 하자”고 다짐하고 나갔다가, 옆에서 다들 신세 한탄을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똑같이 맞장구치며 감정을 소모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반대로 러닝크루에서는 누군가 “이번 주말에 하프 마라톤 나가보려고” 하면 저도 괜히 의욕이 생겨서 함께 신청하곤 했습니다. 제가 특별히 의지가 강해진 게 아니라, 주변의 에너지가 저를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밀어준 것이었습니다.
다른 목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이 개념을 더 찾아보다가 한 가지 주의할 점도 알게 됐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계속 어울리면 오히려 생각이 한쪽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러닝크루 안에서도 가끔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나”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크루 밖의 다른 관점을 가진 친구들과도 일부러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비슷한 사람들에게서는 안정감을,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새로운 자극을 얻는다는 걸 이제는 의식적으로 챙기고 있습니다.
예전 술자리 멤버들과는 완전히 인연을 끊은 건 아닙니다. 다만 만나는 빈도를 줄이고, 만날 때도 예전처럼 늦게까지 술자리를 이어가기보다 가볍게 밥 한 끼 먹는 정도로 관계의 밀도를 조절했습니다. 죄책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제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는 결국 제가 정할 수 있는 몫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오래된 인연이라고 해서 무조건 예전 방식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유유상종 심리학이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입니다. 지금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한번 떠올려보시면 어떨까요. 그 대화의 결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예전 술자리 멤버들과 만날 때면, 그 자리의 공기가 예전과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 스스로 놀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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