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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준비하던 시기, 저는 다섯 번째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서류와 1차, 2차를 다 통과하고 마지막 관문에서 미끄러진 게 벌써 다섯 번째였습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는데, 이상하게 눈물도 안 나고 그냥 멍했습니다. “나는 그냥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력서를 다시 열어볼 힘도 나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떠도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다룬 글을 읽게 됐습니다. 읽으면서 뜨끔했던 게, 저는 그동안 실패를 겪을 때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 안 되는구나” 하고 제 자신 전체를 탓해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아예 안 겪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자기 존재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수정 가능한 사건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보고, 저는 그동안 정반대로 생각해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실패할 때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열어보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이유도, 결국 그 실패를 제 존재 자체의 증거처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복탄력성은 왜 의지력만으로 되지 않을까
회복탄력성은 단순한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위기나 실패를 마주하면 뇌에서 공포와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먼저 반응합니다. 이때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얼마나 빠르게 활성화되어 편도체의 흥분을 가라앉히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회복하는 속도와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멍하니 있었던 것도,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편도체가 계속 경보를 울리고 있는 상태였던 셈입니다.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자주 언급되는 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조절력으로, 감정에 즉각 휘둘리지 않고 잠시 멈춰 다음 행동을 선택하는 힘입니다. 둘째는 인지유연성으로, 실패를 “나라서 안 되는 일”이 아니라 “이번엔 이 부분이 부족했던 일”로 좁혀서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셋째는 대인관계력으로, 혼자 버티기보다 주변에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지지를 받는 힘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중에서 특히 두 번째, 인지유연성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여기에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개념도 함께 따라붙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영구적이고 전반적인 무능함으로 해석하면, 다음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반대로 같은 실패를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사건으로 해석하면, 그 다음 시도로 이어질 힘이 남아 있게 됩니다. 저는 다섯 번의 낙방을 겪으며 정확히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회사와 안 맞았다”가 아니라 “나는 어디를 가도 안 될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계속 미끄러지고 있었던 겁니다.
실패를 감정과 사실로 나눠 적어본 경험
책에서 소개된 방법 중에 실제로 따라 해본 게 있습니다. 노트를 펼쳐서 “나는 실패했다”는 감정 대신, “이번 면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는가”와 “다음 면접까지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만 적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손이 잘 안 갔습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몇 줄 적고 나니, 신기하게도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뭉뚱그려진 생각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준비가 부족했다”는 구체적인 문제로 좁혀졌습니다. 막연한 좌절감이 손에 잡히는 과제로 바뀌자, 아주 조금씩이지만 다시 움직일 힘이 생겼습니다.
거기에 잠들기 전 그날 있었던 좋은 일 세 가지를 억지로라도 적는 습관도 함께 시작했습니다. “오늘 점심이 맛있었다”, “친구가 안부를 물어봤다”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이상하게 이 작은 기록들이 하루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혼자 버티는 대신 주변에 상황을 털어놓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이나 떨어졌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오래된 친구에게 털어놓고 나니, “너 진짜 힘들었겠다, 근데 그동안 그렇게 계속 도전한 것도 대단한 거야”라는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됐습니다. 혼자 끌어안고 있을 때는 실패의 무게가 훨씬 크게 느껴졌는데, 누군가와 나누고 나니 그 무게가 조금은 나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오래 미뤄왔던 건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습니다. 이력서를 붙잡고 있을 힘도 없는데 운동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규칙적인 신체 활동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뇌 영역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고 속는 셈 치고 아침마다 20분씩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며칠은 억지로 나갔지만, 놀랍게도 걷고 돌아온 날은 확실히 머리가 덜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그 20분이 하루를 버티는 최소한의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이며, 개인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반복되는 무기력감이나 좌절이 일상생활을 오래 힘들게 한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가까운 전문가와 이야기 나눠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그해 여섯 번째 면접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습니다. 다섯 번의 실패가 없었다면 여섯 번째도 없었을 거라는 걸, 지금은 압니다. 혹시 지금 반복된 실패 앞에서 스스로를 탓하고 계신다면, 그 실패를 나라는 사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부족했던 한 가지 사실로 조금 좁혀서 봐주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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