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오류, 아까웠던 건 회비가 아니었습니다

매몰비용 오류(독서 모임 탈퇴 섬네일)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그거 아직도 나가?”

아내가 물었을 때 저는 “응”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질문이 남았습니다. “재밌어?”

대답을 못 했습니다. 삼 년 동안 매달 나가던 모임인데, 재미있느냐는 질문에 바로 답이 안 나왔습니다.

삼 년째 나가던 모임

동네 독서모임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오전에 두 시간. 처음 일 년은 정말 좋았습니다. 혼자서는 안 읽었을 책을 읽었고, 회사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오랜만이었습니다.

이 년째부터 사람이 좀 바뀌었습니다. 처음 멤버 중 절반이 빠지고 새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어쩐지 대화가 겉돌기 시작했습니다. 책 이야기보다 근황 이야기가 길어졌고, 저는 그 자리에서 자주 시계를 봤습니다.

삼 년째에는 책을 안 읽고 가는 달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갔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나가려고 준비하면서 몇 번은 “오늘은 그냥 빠질까” 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옷을 갈아입고 나갔습니다. 빠지면 다음 달에 나가기가 더 어색해질 것 같았고,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끝일 것 같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 끝을 제가 계속 미루고 있었던 겁니다.

매몰비용은 이미 사라진 돈입니다

이걸 부르는 이름이 있더군요. 매몰비용 오류입니다.

매몰비용은 이미 써버렸고 무슨 선택을 하든 돌아오지 않는 비용을 말합니다. 제가 삼 년 동안 낸 회비, 토요일 오전마다 쓴 시간, 읽은 책들이 다 여기 해당합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이걸 계산에서 빼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결정해야 할 건 앞으로 매달 두 시간을 여기 쓸 것이냐 아니냐인데, 이미 쓴 삼 년은 계속 나가든 그만두든 똑같이 안 돌아오니까요. 앞으로의 이익만 놓고 보면 답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걸 잘 못합니다. 이유가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가장 큰 건 손실을 확정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계속 나가는 동안에는 삼 년이 아직 낭비로 결론 난 게 아닙니다. 언젠가 다시 좋아질 수도 있고, 그러면 삼 년은 과정이 됩니다. 그런데 그만두는 순간 그 삼 년은 “재미없는 걸 참고 나간 시간”으로 확정됩니다. 판정이 내려지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이미 한 선택과 앞으로의 행동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압력입니다. 주변에 삼 년째 나간다고 말해왔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면, 그동안의 저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적자를 알면서도 개발을 멈추지 못했다고 해서 콩코드 오류라고도 불리는데, 개인의 일상에서도 규모만 작을 뿐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매몰비용 계산에 실제로 들어가 있던 것

아내의 질문을 받고 며칠 생각해봤습니다. 대체 뭐가 아까워서 못 그만두는 건가.

회비는 아니었습니다. 한 달에 만 원 남짓이었으니까요. 시간이 아까웠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은 이미 나가고 있었습니다. 재미없는 자리에 매달 두 시간씩 쓰는 게 더 큰 손해였죠.

며칠 뒤에 알았습니다. 제가 아까워하던 건 삼 년째 독서모임에 나가는 사람이라는 자리였습니다.

책 읽는 사람. 회사 밖에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 꾸준한 사람. 저는 그걸 그만두면 그 이름표들도 같이 반납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모임에 나가는 것과 책을 읽는 게 별개인데도요. 삼 년째에는 책도 안 읽고 갔으면서 그 이름표는 계속 달고 있었습니다.

이걸 알아차리고 나니 좀 민망했습니다. 저는 독서모임을 다닌 게 아니라 독서모임 다니는 사람을 유지하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그리고 그 유지비를 매달 토요일 오전으로 내고 있었습니다.

그만두고 나서

그만둔다고 말하는 데 두 달이 걸렸습니다. 단톡방에 쓸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쳤습니다. 길게 쓰면 변명 같고 짧게 쓰면 무례해 보였습니다. 사정이 생겼다고 쓸까 하다가, 그냥 “요즘 잘 못 맞춰서 이번 달까지만 하겠다”고 보냈습니다. 세 명이 이모티콘을 남겼고 그게 다였습니다. 제가 두 달을 고민한 일이 그쪽에서는 몇 초짜리였습니다. 붙잡고 있던 무게가 저한테만 있었다는 걸 그 이모티콘 세 개로 알았습니다.

토요일 오전이 비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몇 주는 그게 또 불편하더군요. 비어 있는 주말 아침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 문제는 따로 있었던 겁니다. 모임이 그 시간을 채워주고 있었다는 걸 그만두고 나서 알았습니다. 재미가 없어도 자리는 채워주고 있었던 거죠.

요즘은 결정할 때 질문을 하나 바꿔서 합니다. 예전에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면 아깝지 않나”를 물었습니다. 지금은 “지금 처음 시작하는 거라면 이걸 시작할까”를 묻습니다. 같은 상황인데 대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앞의 질문은 과거를 보고, 뒤의 질문은 앞을 봅니다. 독서모임에 이 질문을 대봤을 때 답은 명백했습니다. 처음이라면 저는 그 모임에 안 들어갔을 겁니다.

이 질문을 다른 데도 대봤습니다. 반쯤 보다 만 드라마, 몇 년째 안 쓰면서 해지 안 한 것들, 명절마다 억지로 가던 자리. 몇 개는 그대로 두기로 했고 몇 개는 정리했습니다. 중요한 건 정리한 개수가 아니라, 남긴 것들을 이제는 아까워서가 아니라 원해서 남겼다는 점입니다.

삼 년이 낭비였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첫해에 읽은 책 몇 권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때 알게 된 사람 하나와는 아직 연락합니다. 오히려 모임을 그만두고 나서 그 사람과는 더 편해졌습니다. 모임이라는 명분 없이 만나게 되니까요.

다만 삼 년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지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좋았던 일 년과 겉돌던 이 년을 나눠서 봤다면 훨씬 일찍 정리했을 겁니다. 저는 그걸 통째로 놓고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그만두고 싶은데 그동안이 아까워서 못 그만두는 게 있으시다면, 아까운 게 정확히 무엇인지 한번 이름을 붙여보시면 좋겠습니다. 돈인지, 시간인지, 아니면 그걸 하는 사람이라는 자리인지요. 저는 세 번째였고, 그건 사실 그만둬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제가 겪은 일을 정리한 내용이며,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그만두는 것이 늘 정답은 아니고 상황마다 판단은 다릅니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가 오래 이어져 힘드시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보시길 권합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