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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은 지 한참 됐는데 남은 건 문장 하나였습니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불행의 근원은 인간관계에 있다. 거꾸로 말하면 행복의 원천 또한 인간관계에 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 심리학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기억에 의존해 옮긴 것이라 원문과 표현이 조금 다를 수는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남은 문장 하나
솔직히 말하면 읽을 때는 반쯤 흘려들었습니다. 이 책은 철학자와 청년이 주고받는 대화로 되어 있는데, 청년이 반박하면 철학자가 받아치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읽다 보면 청년 쪽에 마음이 갈 때가 많았습니다. 저 말이 저렇게 딱 떨어지나 싶어서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남은 게 하필 저 문장이었습니다. 과제의 분리니 목적론이니 하는 개념들은 흐려졌는데, 저 한 줄만 계속 걸렸습니다. 아마 동의해서가 아니라 반박하고 싶어서 남았을 겁니다.
아들러가 말한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
이 책이 소개하는 아들러 심리학의 뼈대는 몇 가지로 정리됩니다.
하나는 목적론입니다. 사람은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지금 어떤 목적을 위해 그 과거를 쓰고 있다는 관점입니다. 두 번째는 과제의 분리입니다. 이건 내 과제고 저건 상대의 과제라고 선을 긋고, 상대의 과제에 개입하지도 끌려가지도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세 번째가 공동체 감각인데, 타인을 경쟁 상대가 아니라 동료로 보는 감각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셋을 관통하는 전제가 앞의 문장입니다. 열등감도 결국 누군가와 비교했기에 생기고, 인정 욕구도 누군가를 향한 것이며,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도 대체로 관계 안에서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니 고민의 형태가 무엇이든 파고 들어가면 사람이 나온다는 주장이죠.
여기서 하나 짚어둘 게 있습니다. 이 책은 아들러가 쓴 책이 아닙니다. 두 저자가 아들러 심리학을 해석해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고, 그래서 아들러 본인의 논의와 얼마나 일치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저는 원전을 읽지 않았으므로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할 처지가 아닙니다. 다만 이 책을 아들러의 결론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편이 좋겠다는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 글 목록이 인간관계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문장이 자꾸 걸려서, 검증을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제가 일 년 동안 이 블로그에 쓴 글을 처음부터 훑어본 겁니다.
여든 편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목록을 보다가 좀 멋쩍어졌습니다.
시골집 매도를 삼 년째 미루신 아버지 이야기가 있었고,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 이야기가 있었고, 조카 문제로 물어볼 데가 없다던 형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처형, 처제, 처남, 매형, 후배, 팀장, 이웃, 룸메이트가 다 나왔습니다. 아이가 아빠는 왜 화내냐고 물었던 날도 썼고요.
심리 개념을 다룬 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목만 개념이지 안에 들어 있는 건 거의 다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심리 블로그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만 놓고 보면 인간관계 기록을 쓰고 있었던 셈입니다.
의도한 게 아니었습니다. 매번 그때그때 쓸 만한 소재를 골랐을 뿐인데, 일 년 치를 모아놓으니 한 방향이 나왔습니다.
이게 저만의 편향인지도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사람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만 골라 쓴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반대로 물어보면 답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안 나오는 고민으로 글을 쓰려고 하면, 쓸 말이 금방 떨어집니다. 요금제를 오 년째 안 바꾼 이야기도 결국 제가 왜 게을렀는지로 가는데, 그 게으름조차 누구한테도 아쉬운 소리를 안 해도 되는 상태였기 때문이더군요.
“모든”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저 문장에 완전히 설득된 건 아닙니다. 걸리는 건 “모든”입니다.
목록을 다시 보면 관계와 무관해 보이는 글도 있습니다. 새벽에 자꾸 깨는 문제를 쓴 글이 그렇고, 시험 앞두고 딴짓하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마감, 돈, 몸의 문제는 사람이 없어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인간관계로 다 환원해버리면 설명력이 커 보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특정하지 못하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파고들면 사람이 나온다는 주장은 반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명제는 대체로 위험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청년 쪽에 마음이 갔던 것도 이 대목이었습니다. 청년이 반박하면 철학자가 늘 받아치는데, 받아치는 방식이 종종 “그것도 결국 인간관계다”였습니다. 그러면 대화가 끝나긴 하는데 설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길 수 있는 말과 맞는 말은 다르니까요.
그래도 배경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반박하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니,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더군요.
시험 전에 왜 굳이 변명을 미리 만들어뒀는지 생각해보면, 그 변명은 저 혼자 있을 때 쓰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할 말이 필요했던 겁니다. 토요일 아침에 쉬지 못하던 것도, 결국 아내가 그냥 누워 있는다고 말했을 때 제 상태를 알았습니다. 문제 자체는 혼자만의 것이었는데, 그 문제가 눈에 보이게 된 건 옆에 사람이 있어서였습니다.
그러니 저로서는 이렇게 정리하는 게 정직할 것 같습니다.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쓸 만하다고 느낀 고민은 거의 다 사람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 둘은 다른 이야기인데, 적어도 뒤쪽은 제 글 여든 편이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이 제 생활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이미 하고 있던 걸 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 정도면 읽은 값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읽으실 분께 굳이 한마디 보태자면, 이 책은 답을 얻으려고 읽으면 좀 답답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의 말이 자주 단정적이라 반발이 먼저 오거든요. 저처럼 반발한 채로 덮어두셔도 괜찮습니다. 문장 하나는 남더군요.
이 글은 제가 읽은 책과 제 경험을 정리한 내용이며, 저는 심리상담사도 아들러 연구자도 아닙니다. 인용한 문장은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원문과 다를 수 있으니 정확한 표현은 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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