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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제가 주도했던 프로젝트가 결국 무산됐습니다. 결과가 나온 뒤 저는 팀원들에게 “그때 왜 그렇게 진행했냐”, “일정 관리를 더 신경 썼어야지”라며 몇 주 동안 은근히 책임을 돌렸습니다. 정작 제가 초반에 시장 조사를 소홀히 했던 부분은 거의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내에게도 그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팀원들의 실수만 반복해서 늘어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나 프로젝트 자료를 다시 훑어보다가, 제가 초반에 놓쳤던 결정적인 실수를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무의식적으로 팀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반응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알게 된 개념이 ‘방어기제’였습니다.
방어기제는 왜 우리도 모르게 작동할까
방어기제란 불안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전략을 말합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처음 제안했고, 이후 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이 개념을 더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이 의도적인 거짓말이나 핑계가 아니라,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동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팀원들을 탓할 때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자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로 그게 맞는 판단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겪은 반응은 방어기제 중에서도 ‘투사’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그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느끼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제 실수를 마주하는 게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뇌가 그 불편함을 처리하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는 쪽을 선택했던 셈입니다.
방어기제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찾아보니 방어기제에는 투사 말고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힘든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 불편한 감정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정당화하는 ‘합리화’, 감정을 안전한 다른 대상에게 옮기는 ‘전치’, 그리고 불안한 에너지를 운동이나 예술 같은 건설적인 활동으로 돌리는 ‘승화’도 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중 일부는 오히려 건강한 방식으로 여겨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승화처럼 감정을 파괴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돌리는 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문제는 투사나 부정처럼 현실을 왜곡해서 문제 해결 자체를 미루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를 성숙도에 따라 몇 단계로 나누기도 한다고 합니다. 승화처럼 현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식은 성숙한 방어기제로 분류되고, 반대로 부정이나 투사처럼 현실을 심하게 왜곡하는 방식은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분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명을 읽으며, 제가 그때 썼던 방식이 꽤 미성숙한 축에 속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이런 반응이 특별히 제 인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클 때는 누구나 더 미성숙한 방어기제 쪽으로 쉽게 기울 수 있다는 설명에서는 조금 위안이 됐습니다.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편해진 것들
제 실수를 인정하고 나서, 저는 팀원들에게 뒤늦게나마 사과했습니다. “그때 내가 초반 조사를 제대로 못 한 게 컸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말을 하고 나니 몇 주 동안 무겁게 짓누르던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팀원들도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각자 놓쳤던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임을 떠넘기려 애쓸 때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했을 때 관계도 훨씬 편안해졌다는 걸 그때 느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누군가에게 유독 짜증이 나거나 탓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지금 이 감정이 정말 저 사람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인정하기 싫은 뭔가가 있는 건 아닌가.” 매번 명확한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즉각적으로 남 탓부터 하던 반응 속도가 확실히 느려졌습니다. 그 잠깐의 틈이, 저를 조금 더 솔직한 방향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방어기제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이며, 개인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유독 탓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때, 잠시 멈춰서 “혹시 내가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그 질문 하나가, 불편한 진실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마주할 용기를 줄지도 모릅니다. 저는 요즘도 팀원들과 그때 이야기를 가끔 나누는데, 이제는 웃으며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일상이 힘들 만큼 어려움이 이어진다면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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