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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퇴근길에 노점에서 풍기는 붕어빵 냄새를 맡은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 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친구들과 나눠 먹던 붕어빵, 그때 함께 걷던 골목의 찬 공기, 심지어 그 시절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까지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사진 한 장 본 것도 아니고, 그 시절 얘기를 누가 꺼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냄새 하나였는데,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그 겨울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신기했던 건 평소에 그 시절을 애써 떠올리려 하면 흐릿한 조각들만 겨우 떠오르는데, 냄새를 맡은 그 순간에는 감정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그 겨울의 감정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냄새 하나가 왜 사진이나 옛날 일기장보다도 더 강렬하게 기억을 끌어올리는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경험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찾아보다가 알게 된 게 ‘프루스트 효과’였습니다.
프루스트 효과는 왜 냄새 하나로 감정까지 되살릴까
프루스트 효과는 특정한 냄새나 맛이 과거의 기억, 그것도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까지 통째로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먹는 순간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장면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 현상이 유독 강력한 이유는 후각이 처리되는 뇌의 경로가 다른 감각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정보는 뇌의 시상이라는 부위를 거치며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정리된 뒤에 감정 영역으로 전달됩니다. 반면 냄새 정보는 이 시상을 거치지 않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로 거의 곧바로 연결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볼 때는 “아, 그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냄새를 맡을 때는 이성이 끼어들 틈도 없이 그 시절의 감정 자체가 먼저 밀려오는 것입니다. 제가 붕어빵 냄새를 맡자마자 그 시절의 불안감까지 함께 떠올랐던 것도, 냄새가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으로 직행했기 때문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후각의 특성이 생긴 데는 진화적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전 인류의 조상에게는 눈앞의 열매가 상했는지, 근처에 위험한 짐승이 있는지를 냄새로 빠르게 판단하는 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이성적으로 분석할 시간을 들이기보다, 냄새를 맡는 즉시 몸이 반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서, 우리는 여전히 냄새 앞에서는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는 존재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많은 브랜드나 매장들이 이 원리를 이용해 공간에 특정한 향을 채워 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향과 브랜드 이미지를 은연중에 연결시켜, 나중에 비슷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브랜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전략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냄새, 다른 기억
이 개념을 알고 나서 신기했던 건, 같은 붕어빵 냄새를 맡아도 사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아내는 붕어빵 냄새를 맡으면 대학 시절 첫 아르바이트를 했던 붕어빵 가게가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같은 냄새인데 저는 고3의 불안했던 겨울을, 아내는 스무 살의 설렜던 아르바이트 시절을 떠올린 겁니다. 결국 냄새 자체가 감정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냄새와 함께 저장된 각자의 경험이 감정을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곁에서 실천해본 것
이 원리를 알고 나서, 저는 요즘 힘든 일이 있을 때 일부러 편안했던 시절과 연결된 냄새를 찾아 맡아보곤 합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나던 것과 비슷한 향의 비누를 사서 욕실에 두었는데, 그 냄새를 맡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심할 때 무심코 맡았던 냄새가 오히려 그 스트레스와 함께 각인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힘든 순간에는 되도록 익숙하고 편안한 향 쪽으로 의식적으로 옮겨가려 합니다.
요즘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 원리를 자주 떠올립니다. 아이가 잠들기 전 늘 같은 향의 로션을 발라주고, 같은 책의 냄새를 맡게 해주는데, 언젠가 이 냄새들이 아이에게도 평생 안정감을 주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창한 교육이 아니어도,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향과 분위기 하나가 나중에 아이의 마음 한구석을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다가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프루스트 효과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입니다. 문득 어떤 냄새를 맡고 갑자기 오래된 감정이 밀려온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뇌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 냄새와 감정을 하나로 묶어 보관해왔기 때문일 겁니다. 혹시 요즘 마음이 어수선하시다면, 편안했던 시절과 닮은 향 하나를 일상에 슬쩍 놓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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