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을 곱씹게 만든, 회사에서 목격한 침묵의 순간

악의 평범성 섬네일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 회의실 안의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다들 서로 눈치만 보다가, 결국 “위에서 시킨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조용히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저 역시 그 침묵의 일부였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습니다. 다들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자기 몫의 서류를 처리했을 뿐인데, 그 결과가 조금씩 쌓여 누군가에게는 부당한 결과로 돌아갈 상황이었습니다.

이 불편함을 안고 집에 돌아와, 오래전 읽었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시 펼쳐 들었습니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아렌트가 남긴 그 유명한 개념, ‘악의 평범성’이 그날의 회의실 풍경과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악의 평범성은 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함에서 시작될까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사람들이 상상했던 사악한 괴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대머리에 돋보기안경을 쓴,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그는 재판 내내 자신이 그저 명령을 충실히 따른 성실한 공무원이었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아렌트는 이 재판을 지켜보며, 그의 죄가 유대인 개개인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걸 포착했습니다. 그의 진짜 문제는 자신이 처리하는 행정 업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묻기를 멈춘 데 있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사유의 직무유기’였습니다.

이 개념이 무서운 이유는, 특별히 사악한 사람만이 이런 침묵에 빠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거대한 조직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만 몰두하다 보면, 그 역할이 만들어내는 결과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 회의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순간,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그 직무유기에 살짝 발을 담그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현상이 관료제 조직에서 유독 잘 나타나는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큰 조직일수록 하나의 결정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잘게 쪼개지는데, 각 단계의 담당자는 전체 그림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부분만 처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최종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 분산되어, “나는 그저 이 서류에 도장을 찍었을 뿐”이라는 감각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희 회사의 그 결재 라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사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어야 할 지점은 이미 흐릿하게 지워져 있었습니다.

복종의 심리는 실험으로도 확인됐습니다

이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평범한 사람들을 모아, 권위 있는 실험자의 지시에 따라 다른 참가자에게 점점 강한 전기 충격을 주도록 요청한 실험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전기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지만, 많은 참가자가 상대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들으면서도 “책임은 실험자에게 있다”는 말에 지시를 계속 따랐다고 합니다. 이 결과는 사람이 권위 앞에서 얼마나 쉽게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회의실에서 다들 “위에서 시킨 일”이라며 도장을 찍었던 그 순간도, 결국 이 실험이 보여준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침묵하지 않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저는 작은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지시가 내려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반박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부분은 한 번 더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질문 하나는 남기려 합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용기가 필요했지만, 몇 번 해보니 그 질문 하나가 회의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꾼다는 걸 느꼈습니다. 다들 속으로는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는 게, 그 질문 이후에야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을 남기는 습관도 들였습니다.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그 배경과 제 의견을 짧게라도 메모해두는데,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다 보니 나중에 “그때는 나도 몰랐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할 여지가 줄었습니다. 기록은 결국 제가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는지 되짚어볼 증거이자,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같은 침묵을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장치가 되어주었습니다.

동료들과의 대화 방식도 조금 바꿨습니다. “위에서 시켰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저는 이제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뭐가 있을까”라고 되묻습니다. 완전히 거스를 수 없는 지시라도,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찾아보려는 시도 자체가, 완전한 침묵과는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후배 한 명이 비슷한 상황에서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선배님도 예전엔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 물음에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예전엔 그랬고, 지금도 완벽하게 다 바뀐 건 아니라고요.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질문을 던지려 애쓰고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후배는 그 뒤로 작은 회의에서도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저 하나의 작은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거대한 조직 앞에서 우리는 종종 작고 무력하게 느껴지지만, 침묵 대신 작은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그 흐름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혹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지시나 결정을 마주하신다면, 완전한 저항이 아니어도 좋으니 작은 질문 하나를 남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