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JOMO)를 실감한, 동창회 초대를 거절하고 보낸 혼자만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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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안 갈래.” 단체 채팅방에 몇 년 만에 동창회 공지가 올라왔을 때, 저는 평소와 달리 선뜻 참석 버튼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오랜만인데 얼굴이나 볼까” 하며 무조건 나갔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집에서 혼자 조용히 저녁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결국 참석하지 않기로 했고, 동창회가 열리는 시간에 저는 집에서 좋아하는 책을 펴고 차 한 잔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살짝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다들 모여서 즐겁게 노는데 나만 빠지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죄책감보다 훨씬 큰 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아무런 약속도, 아무런 대화도 없는 저녁이 이렇게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습니다. 다음 날 동창들이 올린 사진을 봐도 부럽다는 마음보다는, 어제 제가 보낸 조용한 저녁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낯선 감정이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알게 된 단어가 ‘조모(JOMO)’였습니다.

조모는 왜 놓치는 것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바꿀까

조모는 ‘Joy Of Missing Out’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놓치는 것의 즐거움’ 정도로 옮길 수 있습니다. 유행이나 타인의 활동에서 소외되는 걸 두려워하는 대신,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과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감정과 태도를 뜻한다고 합니다. 흔히 알려진 포모(FOMO), 그러니까 남들이 하는 걸 놓칠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 감정이 최근 들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끊임없는 비교와 무한 경쟁, 그리고 SNS 속 타인의 삶을 계속 들여다보는 데서 오는 피로감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여행 사진, 모임 사진을 보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그 반작용으로 “나는 굳이 다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날 동창회를 거절하며 느꼈던 그 편안함이, 결국 오랫동안 쌓여온 비교의 피로감이 슬며시 풀린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흐름은 자율성에 대한 욕구와도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낄 때 훨씬 큰 만족감을 느끼는데, 남들의 일정과 유행에 끌려다니는 삶은 그 자율성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동창회를 거절했던 그 순간, 단순히 모임 하나를 안 나간 게 아니라 오랜만에 제 저녁을 온전히 제가 정했다는 감각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조모가 주는 만족감의 핵심은 결국 이 자율성의 회복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무엇을 놓쳤는지보다 무엇을 얻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저는 모임을 놓치는 것 자체를 손해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관점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동창회에 가지 않은 대신, 저는 오랜만에 방해받지 않고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었고, 평소보다 훨씬 깊이 잠들었습니다. 무언가를 놓쳤다는 감각보다, 그 시간 동안 제가 실제로 얻은 것들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조모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의 시간표 대신 제 시간표를 따라가며 얻는 만족감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조모를 실천해본 방법

이 개념을 알고 나서, 저는 몇 가지를 조금씩 바꿔봤습니다. 가장 먼저 시도한 건 SNS 앱을 스마트폰 첫 화면에서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지우지는 않았지만 폴더 깊숙이 넣어두니, 무심코 켜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예전엔 자기 전에 습관처럼 남들의 일상을 훑어봤는데, 그 시간이 사라지니 오히려 제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모임 초대를 받을 때도 예전과는 다르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거절하면 관계가 서운해질까 봐 웬만하면 다 참석했는데, 이제는 “이번엔 그냥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솔직하게 그렇게 말합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거절해도 관계가 크게 상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오히려 가끔 만나는 자리를 더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혼자 보내는 저녁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약속 없는 저녁을 “심심한 시간”으로 여겼는데, 이제는 그 시간을 일부러 좋아하는 활동으로 채웁니다. 산책을 하거나, 아무 계획 없이 요리를 해보거나, 그냥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도 이제는 아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조용한 시간이 쌓이면서, 정작 사람들과 만날 때 더 집중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걸 느낍니다.

아내에게도 이 변화를 이야기했더니, 아내도 요즘 비슷한 걸 느낀다고 했습니다. 예전엔 주말마다 뭔가 계획을 채워 넣지 않으면 불안해했는데, 요즘은 일부러 아무 약속도 없는 토요일을 만들어둔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텅 빈 하루가 아깝게 느껴졌는데, 막상 그런 날을 보내고 나면 오히려 다음 한 주를 훨씬 개운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요즘 한 달에 한 번쯤은 일부러 아무 일정도 잡지 않는 날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조모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입니다. 모든 모임에 다 참석하고, 모든 유행을 다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하루,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대신 무엇을 얻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그날 저녁의 조용했던 공기를 떠올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