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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나중에 듣고 일단 해봅시다.” 이직한 회사에서 처음 맞이한 팀장님의 첫마디였습니다. 회의 시간에 제안을 하나 꺼내자마자, 팀장님은 검토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실행 지시를 내렸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는 아무리 작은 결정도 몇 단계 검토를 거쳤는데, 이 팀장님은 회의실을 나서기도 전에 이미 다음 할 일을 지시하고 계셨습니다.
처음 몇 달은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제 의견을 채 다 말하기도 전에 결론부터 정리해버리시는 스타일이 서운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팀장님이 이끄는 프로젝트는 늘 마감을 넘기지 않았고 성과도 확실했습니다. 다른 팀이 몇 주씩 논의만 하다 흐지부지되는 사이, 저희 팀은 이미 결과물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추진력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이게 DISC 검사에서 말하는 ‘D형, 주도형’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D형은 왜 결론부터 먼저 달려갈까
DISC에서 D형은 ‘Dominance’, 즉 주도형을 뜻합니다. 환경을 스스로 통제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일 중심의 성향이라고 합니다. 목표가 정해지면 뒤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위기 상황에서도 주저 없이 결정을 내리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남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과제일수록 오히려 승부욕이 자극된다는 설명을 보고, 팀장님이 유독 까다로운 프로젝트를 자원해서 맡으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 유형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상황을 직접 통제하고 주도할 때 가장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일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르고 가시적인 성과를 잘 만들어내는 반면, 성격이 급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듣지 않거나 결과만 따지다 주변의 감정을 소홀히 여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팀장님이 회의에서 제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결론부터 정리하셨던 것도, 결국 이런 성향의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던 셈입니다.
이 성향이 가장 빛을 발했던 순간은 프로젝트 도중 서버 장애가 터졌을 때였습니다. 다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팀장님은 곧바로 우선순위를 정리하고 각자에게 역할을 나눠주셨습니다. “지금 논의할 시간 없으니 일단 이대로 움직입시다”라는 한마디에, 신기하게도 팀 전체가 순식간에 정돈됐습니다. 평소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던 그 저돌적인 태도가,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팀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그날 확실히 느꼈습니다.
같은 D형도 조금씩 다른 결이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D형 안에도 두 번째로 강하게 나타나는 보조 성향에 따라 결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순수하게 주도성만 극단적으로 강한 유형은 주변 환경을 완전히 자신의 방식에 맞추려 하고, 여기에 사교성이 더해지면 사람들을 설득하며 이끄는 힘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안정성이 더해지면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계획을 세워 꾸준히 밀고 나가는 성향이 강해지고, 신중함이 더해지면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유형이 된다고 합니다. 저희 팀장님은 돌이켜보면 마지막 유형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즉흥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늘 근거 자료를 촘촘히 준비해두고 계셨으니까요.
곁에서 알게 된 소통법
시간이 지나며 저도 이 팀장님과 일하는 요령을 조금씩 터득했습니다. 의견을 낼 때 배경 설명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고 그 뒤에 이유를 붙이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그러자 훨씬 빠르게, 그리고 훨씬 진지하게 제 의견을 들어주셨습니다. 예전엔 서론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다가 중간에 말이 끊기곤 했는데, 결론을 먼저 던지니 오히려 대화가 더 매끄럽게 이어졌습니다.
감정적으로 서운했던 순간도 방식을 바꿔서 풀었습니다. “그때 서운했다”고 감정만 전하기보다, “다음엔 이 부분에서 제 의견도 확인해주시면 좋겠다”처럼 구체적인 요청으로 바꿔 말씀드렸더니, 팀장님도 훨씬 수용적으로 반응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팀장님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저를 신뢰하고 계셨다는 걸, 중요한 프로젝트를 통째로 맡기신 순간 알게 됐습니다. 말은 없어도 결과로 믿음을 보여주는 분이었던 셈입니다.
이직 1년 차 평가 면담에서 팀장님이 해주신 말씀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은 잘 못 하는데, 대신 계속 중요한 일을 맡기는 걸로 표현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그동안 쉴 틈 없이 몰아치던 업무 지시들이 사실은 저에 대한 나름의 인정 표현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유형에게는 화려한 말보다, 함께 일을 맡기고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곧 신뢰의 언어였던 셈입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곁에서 지켜본 한 사람의 사례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DISC는 개인의 성격을 완전히 설명하는 진단 도구가 아니며, 같은 D형이라도 자라온 환경이나 조직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혹시 주변에 유독 빠르고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속도를 무례함으로만 보기보다 결론부터 나누는 대화 방식으로 다가가 보시면 어떨까요. 의외로 훨씬 편안하게 마음을 열어줄지도 모릅니다. 저는 요즘도 팀장님께 보고할 때만큼은, 결론부터 던지는 그 짧은 습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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