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의 심리학,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할 때 제가 너무 빨리 나섰습니다

감정과 습관의 심리 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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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 라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

주말 오후였습니다. 딸이 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말했습니다.

“아빠, 심심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 입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림 그릴래, 아니면 보드게임 할까, 아빠가 책 읽어줄까. 몇 개를 내놓고도 다 싫다고 하면 결국 태블릿을 켜줬고요.

옆에서 아들이 따라서 심심하다고 하면 저는 또 다른 걸 꺼냈습니다. 종이접기, 블록, 아이스크림 사러 나가기.

그게 아빠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비어 있다고 말하면 얼른 채워주는 게요.

그런데 그날은 제가 마감 중이었습니다. 원고를 놓을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조금만 알아서 놀아달라고 했습니다.

딸은 한참을 소파에서 뒹굴었습니다. 몇 번 더 심심하다고 소리쳤고요. 저는 그때마다 알았다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러다 조용해졌습니다. 십 분쯤 지나자 거실에서 소리가 났고, 그다음에는 발소리가 베란다 쪽으로 갔습니다. 저는 원고에 붙어 있느라 무슨 일인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주의를 걸어둘 데가 없는 상태

지루함을 다룬 연구 중에 제 머릿속에 오래 남은 정의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존 이스트우드와 동료들이 정리한 설명입니다.

이들은 지루함을 주의의 문제로 봤습니다. 무언가에 주의를 쏟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쏟을 대상을 찾지 못한 상태라는 겁니다.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을 걸어둘 고리가 없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지루함은 할 일이 없는 상태와 같지 않습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도 지루할 수 있고, 아무 일정이 없는 날에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이는 지금 내 주의가 어딘가에 제대로 붙어 있는지에 있습니다.

이 정의가 마음에 걸렸던 이유가 있습니다. 지루함이 신호라면, 그 신호는 무언가를 찾아보라고 보내는 신호일 텐데요. 저는 그 신호를 아이 대신 제가 받아서 처리해버렸던 겁니다.

배가 고프다고 할 때 밥을 주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습니다. 심심하다는 말은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모르겠다는 말에 더 가까웠는데, 저는 그 말을 주문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노모포비아를 쓰면서 휴대폰이 손에 없을 때 올라오는 불안을 다뤘는데, 제가 화면을 켜는 순간 대부분은 심심함이 막 시작된 지점이었습니다. 주의를 붙일 데를 찾기 전에 가장 쉬운 고리를 걸어버린 셈입니다.

비어 있다는 표시가 하는 일

지루함을 의미의 문제로 본 연구들도 있습니다. 판틸부르크와 에릭 이구가 이어온 작업이 그런 쪽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 지루함이 올라오고, 그 지루함이 사람을 의미 있어 보이는 쪽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설명입니다.

지루함이 다음 행동을 부른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지루한 과제를 먼저 하게 한 뒤에 아이디어를 내게 했더니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새로운 답이 나왔다는 실험들이 보고됐습니다. 샌디 만과 동료의 연구가 자주 인용됩니다.

반대 방향의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생각만 하게 두었을 때 많은 사람이 그 시간을 꽤 불편하게 느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티모시 윌슨과 동료들의 실험입니다.

정리하면 지루함은 불편한 상태이고, 그래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상태입니다. 불편함이 있어야 뭔가를 찾아 나서니까요. 제가 그 불편함을 매번 걷어내주면, 찾아 나서는 일도 같이 걷어내게 됩니다.

그러니 심심하다는 말에 바로 답을 주는 게 꼭 친절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답을 찾아보는 연습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제가 답지를 넘겨준 것과 비슷했습니다.

지루함을 재는 일은 까다롭습니다

짚어둘 게 있습니다.

지루함 연구는 대부분 스스로 답한 설문에 기대고 있습니다. 지금 얼마나 지루한지 점수로 표시하게 하는 식이요. 그래서 사람마다 같은 점수가 같은 상태를 뜻하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또 잘 지루해하는 성향과 지금 지루한 상태는 다른 것인데, 둘이 섞여서 다뤄진 연구들도 있습니다.

지루함이 창의성을 늘린다는 결과도 조건에 따라 갈립니다. 효과가 얼마나 큰지, 어떤 종류의 지루함에서 그런지는 제가 자신 있게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심심하게 두면 아이가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는 식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삼 분쯤 기다려봅니다

요즘은 아이가 심심하다고 하면 바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래, 심심하겠네. 그 정도만 말하고 제 일을 계속합니다. 무심한 척이 아니라 기다리는 겁니다. 삼 분쯤이요.

대개 그 몇 분 안에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시작합니다. 안 되는 날도 있습니다. 심심하다는 말이 다섯 번 넘게 오면 그때는 같이 놉니다. 기다리기가 원칙이 되면 그것도 이상해지니까요.

소확행 심리학을 쓰면서 작은 일에서 즐거움을 건져 올리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아이들이 빈 시간에 만들어내는 놀이가 딱 그런 종류였습니다. 어른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요.

저한테도 같은 규칙을 적용해봤습니다. 원고가 막혀서 지루해질 때 바로 휴대폰을 켜지 않고 잠깐 그 상태로 앉아 있어 봅니다. 창밖을 보거나 책장을 훑는 정도로요. 그러면 종종 다음 문장이 옵니다. 안 오면 그때 나가서 물을 마십니다.

베란다에서 개미를 보던 오후

그날 조용해진 뒤에 제가 거실로 나가 봤습니다.

아이들은 베란다에 나란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화분 옆으로 개미가 줄지어 가는 걸 보고 있었고요. 딸이 빨대로 물을 조금 흘려서 길을 막아놨습니다. 개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요.

아들은 그걸 보면서 계속 중계를 했습니다. 얘가 돌아간다, 얘는 그냥 건너간다, 하고요.

제가 뭘 하고 있냐고 물으니 딸이 개미 실험이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방해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조금 머쓱했습니다. 제가 제일 자주 방해한 건 심심한 시간이었구나 싶어서요.

지금도 아이가 심심하다고 하면 뭘 꺼내고 싶은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다만 요즘은 그 손을 한 번 접어둡니다. 개미 실험 같은 게 그 빈자리에서 나온다는 걸 봤으니까요.

이 글은 지루함에 관한 심리학 연구를 제 육아 경험에 비춰본 개인적인 기록이며, 아이나 어른의 무기력과 지루함이 오래 이어져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관련 전문가나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