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성 편향, 칭찬 열 마디보다 지적 한 마디가 남습니다

부정성 편향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아홉 줄은 흘렀고 한 줄이 남았습니다

일한 것을 두고 의견을 받은 날이 있었습니다. 열 줄쯤 되는 내용이었고 그중 아홉 줄은 괜찮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대목이 왜 좋았는지까지 적힌 성의 있는 글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줄에 아쉬운 점이 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심한 말도 아니었고 고칠 만한 지적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제 머릿속에 남은 건 그 한 줄이었습니다. 아홉 줄은 읽을 때 좋았고, 읽고 나서는 없었습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잘 안 떠올랐습니다.

이상한 배분입니다. 아홉과 하나인데 남은 건 하나입니다.

그날 잠들기 전까지 저는 그 한 줄을 여러 번 다시 읽었습니다. 아홉 줄은 한 번도 다시 안 봤습니다.

부정성 편향, 나쁜 것이 더 세게 작동합니다

이 배분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부정성 편향입니다. 같은 크기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 나쁜 쪽이 더 크게 느껴지고 더 오래 남는다는 뜻입니다.

2001년 바우마이스터 연구진이 이 주제로 흩어져 있던 연구들을 한데 모아 정리했습니다. 제목이 그대로 결론이었습니다.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논문 제목을 이렇게 단정적으로 다는 경우가 드문데, 그만큼 방향이 일관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확인한 것은 이 비대칭이 특정 영역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첫인상을 만들 때도, 관계가 흔들릴 때도, 배우고 기억할 때도, 감정이 오르내릴 때도 같은 기울기가 나타났습니다. 좋은 사건보다 나쁜 사건이 사람에게 더 큰 폭으로 작용했습니다.

영역마다 따로 발견된 것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모양이 드러났습니다. 여러 연구자가 각자 자기 분야에서 같은 기울기를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나쁜 신호에 민감한 편이 유리했습니다

설명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대가의 차이입니다.

좋은 신호를 하나 놓치면 대개 기회를 하나 놓칩니다. 아쉽지만 다음이 있습니다. 나쁜 신호를 하나 놓치면 손해가 그보다 큽니다. 그러니 나쁜 쪽에 민감한 편이 살아가는 데 유리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소식을 한 번 못 들은 사람과 위험 신호를 한 번 못 본 사람은 치르는 값이 다릅니다. 저울이 한쪽으로 기운 게 고장이 아니라 설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설명이 맞는지는 제가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결과 자체는 여러 영역에서 반복해서 확인된 것이라, 개인의 성격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그날 한 줄을 붙들고 있었던 것도 제가 유난히 예민해서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고립효과를 쓰면서 여럿 중 하나만 달라도 그것이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여기서는 다른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아홉 줄 사이에서 한 줄이 도드라진 이유는 그것만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날의 한 줄은 두 가지 힘을 동시에 받고 있었습니다. 나쁜 쪽이라 무겁고, 혼자라 눈에 띄었습니다.

저울이 기울어 있다는 걸 알면

먼저 받는 쪽에서요.

의견을 받고 하루가 무거우면, 그 무거움이 실제 비율보다 크다는 걸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아홉과 하나인데 하나만 남았다면 그건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저울의 문제입니다. 다시 읽어보면 대개 처음 읽었을 때와 인상이 다릅니다.

무거움을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그 무게가 정확한 값은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두면, 하루를 그 한 줄에 다 내주지는 않게 됩니다.

다음은 주는 쪽에서요.

지적 하나를 하려면 그 앞에 칭찬 하나를 붙이는 걸로는 균형이 안 맞습니다. 하나와 하나는 개수만 같습니다. 저울이 기울어 있으니 개수를 맞춰도 무게가 안 맞습니다. 아이에게 뭔가를 짚어줄 때 이걸 자주 잊습니다. 아이 쪽 저울은 어른보다 더 기울어 있을 텐데도요. 잘한 것 여러 개를 말하고 아쉬운 것 하나를 붙였는데, 아이 쪽에 남는 건 마지막 하나입니다.

골렘 효과를 쓰면서 낮은 기대가 상대를 실제로 낮추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 통로 중 하나가 이것일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신호는 적게 보내도 크게 도착합니다.

관계에서도 같습니다. 좋았던 대화 열 번과 상한 말 한 번이 있으면, 그 관계에 대한 인상은 한 번 쪽으로 기웁니다. 억울하지만 상대 쪽에서도 저에 대해 같은 계산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지적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적자면, 나쁜 말을 하지 말자는 결론은 아닙니다.

아쉬운 점을 안 짚으면 고칠 자리를 못 찾습니다. 좋은 말만 오가는 관계가 편하기는 해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저울이 기울어 있다는 걸 아는 것과,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저울을 알면 지적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크게 도착할 걸 아니까 작게 보내면 됩니다.

제가 바꾸려는 건 양보다 방식입니다. 지적을 할 때는 그것 하나만 분명하게 말하고, 그 자리에 다른 말을 섞지 않으려 합니다. 칭찬으로 감싸면 칭찬은 안 남고 지적만 남는데, 그러면 칭찬을 낭비한 셈이 됩니다.

그리고 좋은 말은 따로 떼어 다른 날에 합니다. 그래야 그 말이 완충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도착합니다. 같은 자리에 놓으면 나쁜 쪽이 좋은 쪽을 먹습니다. 칭찬 뒤에 그런데가 붙는다는 걸 알면, 나중에는 칭찬을 들을 때부터 뒤를 기다리게 되고요.

아홉 줄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날 밤에 저는 그 의견을 다시 열어봤습니다.

아홉 줄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어느 대목이 왜 좋았는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그게 다 눈에 들어왔는데 저녁에는 하나도 안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읽으니 그 아홉 줄도 시간을 들여 쓴 글이라는 게 보였습니다. 대충 좋다고 한 게 아니라 읽고 생각해서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걸 통째로 흘려버린 셈이니 보낸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남는 것을 제가 정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남지 않은 것을 다시 꺼내볼 수는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좋은 의견은 따로 저장해둡니다. 저울이 기울어 있으니 손으로 한 번 눌러주는 셈입니다.

지적 한 줄은 안 적어둬도 알아서 남습니다. 그건 이미 충분히 기억되고 있으니 따로 챙길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