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바의 법칙을 실감한, 청첩장 명단을 정리하며 깨달은 인간관계의 한계

던바의 법칙 섬네일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이 사람도 넣어야 하나?” 결혼식 청첩장 명단을 정리하며 스마트폰 연락처를 하나씩 훑던 날이었습니다. 저장된 연락처는 800개가 훌쩍 넘었는데, 막상 명단을 채우려니 손이 자꾸 멈췄습니다. 몇 년째 연락 한 번 안 한 동창, 이름만 겨우 기억나는 예전 동료, 회사에서 스치듯 인사만 나눈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작 편하게 연락해서 “이번 주말에 시간 돼?”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신기했습니다. SNS 팔로워는 수백 명이고 연락처도 넘쳐나는데, 정작 진짜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은 왜 이렇게 적을까 싶었습니다. 이 궁금증을 안고 찾아보다가 알게 된 개념이 ‘던바의 법칙’이었습니다.

던바의 법칙은 왜 관계에 한계선을 그을까

던바의 법칙은 한 사람이 안정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원이 대략 150명 정도라는 이론입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영장류의 뇌 크기와 무리 규모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다가 발견한 원리라고 합니다. 뇌에서 사회적 관계를 처리하는 부위의 크기가 클수록 더 큰 무리를 이루어 살 수 있는데, 이 상관관계를 인간의 뇌 크기에 대입해보니 나온 숫자가 150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웠던 건 이 150명이 다 같은 무게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몇 개의 층으로 나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가장 안쪽에는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여섯 명의 절친한 사이가 있고, 그다음 층에는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 15명 정도, 그 바깥에는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50명 정도, 가장 바깥층에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아는 150명이 자리한다고 합니다. 저는 청첩장 명단을 정리하며 정확히 이 층위를 몸으로 느꼈던 셈입니다. 800개가 넘는 연락처 중 대부분은 가장 바깥층, 혹은 그 밖으로도 밀려난 이름들이었고, 정작 제 삶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그중 극히 일부였습니다.

찾아보니 SNS가 등장한 이후에도 이 숫자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팔로워나 친구 목록은 수백, 수천 명까지 늘어날 수 있지만, 그중에서 실제로 마음을 나누고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관계의 규모는 여전히 이 한계 안에 머문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고 합니다. 결국 온라인에서 아무리 연결이 늘어나도, 우리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진짜 친밀함의 총량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팔로워 수는 늘어도 정작 힘든 날 연락하는 사람은 몇 년째 똑같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관계의 폭보다 깊이가 중요했던 이유

이 개념을 알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맥이 넓고 좋은 거라고 막연히 여겼는데, 실제로 우리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관계를 무한정 늘리려 애쓰기보다, 이미 가진 소수의 관계를 얼마나 깊이 있게 가꾸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연락처 800개를 유지하는 데 쓰던 에너지를, 정작 진짜 가까운 몇 명에게 더 쏟았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곁에서 다시 정리해본 관계들

이 경험 이후로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무조건 연락처부터 주고받던 습관을 조금 내려놨습니다. 대신 이미 가까운 사람들과의 시간을 더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친구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한동안 뜸했던 가족 모임에도 더 자주 얼굴을 비쳤습니다. 관계의 숫자를 늘리는 대신 이미 있는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셈이었습니다.

연락처 정리도 함께 했습니다. 몇 년째 연락 한 번 없던 번호들을 정리하려니 처음엔 괜히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막상 정리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남은 연락처를 보니 제 삶에서 진짜 의미 있는 사람들이 훨씬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는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진심으로 연락하게 됐습니다.

청첩장 명단도 결국 이 기준으로 다시 정리했습니다. 인원수를 채우려 애쓰기보다, 정말 축하받고 싶고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로만 채웠습니다. 결혼식 당일, 넓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얼굴들을 보며, 그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이 원리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예전엔 무조건 명함을 주고받고 다음을 기약했는데, 이제는 “이 사람과 정말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가”를 한 번 더 생각해봅니다. 억지로 관계를 넓히려 하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대신 이미 있는 관계에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늘었습니다. 아내와도 가끔 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희 부부는 이제 명절이나 기념일에 챙길 사람 목록을 짤 때도 숫자보다 진심을 먼저 기준으로 삼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던바의 법칙이라는 개념에 비춰 정리한 내용입니다.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려 애쓰기보다, 이미 가진 소수의 관계를 얼마나 소중히 가꾸고 있는지 한번 돌아봐 주시면 어떨까요. 연락처 목록의 숫자보다, 진짜 힘들 때 떠오르는 몇몇 얼굴이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요즘도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마다, 이 관계가 제 삶의 어느 층에 자리하게 될지 가만히 가늠해보곤 합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