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효과, 다시 읽는 것보다 덮고 떠올리는 쪽이 남습니다

시험 효과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세 번 읽었는데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읽어야 할 자료가 있었습니다. 스무 쪽 남짓이었고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세 번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읽고, 두 번째에는 형광펜을 그으면서 읽고, 세 번째에는 그은 데만 다시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났을 때 내용이 꽤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제 됐다 싶었습니다.

며칠 뒤에 누가 그 내용을 물었습니다. 대답을 못 했습니다. 어디쯤에 나와 있었는지, 몇 번째 장이었는지는 떠오르는데 내용이 안 나왔습니다.

세 번 읽은 스무 쪽에서 제가 가져온 게 거의 없었던 겁니다. 익숙해진 것과 아는 것을 헷갈렸던 것 같습니다.

시험 효과, 꺼내보는 일이 기억을 만듭니다

이 차이를 다루는 개념이 시험 효과입니다. 인출 연습이라고도 부릅니다. 배운 것을 다시 집어넣는 것보다 꺼내보는 쪽이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입니다.

2006년 헨리 로디거와 제프리 카피키가 이걸 실험으로 비교했습니다. 설계가 깔끔합니다.

대학생들에게 짧은 산문 자료를 읽게 하고 세 집단으로 나눴습니다. 첫 집단은 같은 자료를 네 번 읽습니다. 둘째 집단은 세 번 읽고 한 번은 덮고 떠올려 적습니다. 셋째 집단은 한 번만 읽고 세 번을 덮고 떠올려 적습니다. 떠올려 적는 동안에는 자료를 못 봅니다. 맞았는지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공부한 총 시간은 비슷하게 맞췄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시간을 읽는 데 쓰느냐 꺼내는 데 쓰느냐였습니다.

오 분 뒤에 본 시험에서는 네 번 읽은 집단이 가장 잘했습니다. 83퍼센트였고, 세 번 읽은 집단이 78퍼센트, 한 번 읽은 집단이 71퍼센트였습니다. 읽은 만큼 성적이 나왔습니다.

일주일 뒤에 순서가 뒤집혔습니다. 네 번 읽은 집단은 40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세 번 읽고 한 번 꺼낸 집단은 56퍼센트였고, 한 번 읽고 세 번 꺼낸 집단은 61퍼센트였습니다.

가장 적게 읽은 집단이 일주일 뒤에 가장 많이 기억했습니다.

같은 연구에는 오 분과 이틀, 일주일로 간격을 나눈 실험도 함께 실렸습니다. 거기서도 모양이 같았습니다. 바로 보는 시험에서는 다시 읽은 쪽이 앞섰고, 이틀이 지나면서 순서가 바뀌었고, 일주일 뒤에는 차이가 더 벌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방식의 격차가 커졌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읽기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짧게 보고 끝날 일이라면 다시 읽는 쪽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오래 가져가야 하는 것이라면 반대였습니다.

본인들은 반대로 예측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제가 제일 오래 붙들고 있었던 것은 성적이 아니라 예측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일주일 뒤에 얼마나 기억할 것 같은지도 물었습니다. 일곱 점 척도에서 네 번 읽은 집단이 4.8로 가장 높게 답했습니다. 세 번 읽은 집단이 4.2였고, 세 번 꺼낸 집단이 4.0으로 가장 낮았습니다.

실제 결과와 정확히 반대 순서였습니다. 가장 자신 있던 집단이 가장 많이 잊었습니다.

이유는 짐작이 갑니다. 읽는 일은 매끄럽습니다.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고 아는 내용 같습니다. 그 매끄러움을 우리는 익혔다는 신호로 읽습니다.

꺼내는 일은 껄끄럽습니다. 안 떠오르고 막히고 틀립니다. 그 껄끄러움은 아직 모른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그런데 기억을 만드는 것은 껄끄러운 쪽이었습니다.

그러니 공부가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은 꽤 자주 반대 신호입니다. 편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 힘이 덜 들고 있다는 뜻이고, 힘이 덜 든 것은 나중에 남는 것도 적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고 제가 세 번째로 읽을 때 느낀 그 편안함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더닝 크루거 효과를 쓰면서 아는 정도를 재는 감각 자체가 잘 안 맞는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여기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시험 효과는 성적표가 아닙니다

시험이라는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 쉬워서 적어둡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평가가 아닙니다. 누가 채점하지 않아도 되고 점수가 남지 않아도 됩니다. 자료를 덮고 방금 읽은 것을 떠올려 적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실험에서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효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건 공부를 평가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넣는 시간과 꺼내는 시간의 비율을 바꾸자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꺼내기가 효과를 내려면 어느 정도는 떠올라야 합니다. 아예 안 읽은 것을 꺼내려 하면 꺼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순서는 읽기가 먼저입니다. 다만 읽기를 반복하는 대신 그 자리를 꺼내기에 넘기는 것입니다.

덮는 일이 미루기보다 어렵습니다

막상 해보니 걸리는 지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덮는 순간이 불편합니다. 아직 다 못 외운 것 같은데 덮으라니 불안합니다. 한 번 더 읽으면 확실해질 것 같은 느낌이 계속 옵니다. 그 느낌을 거스르는 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지연행동을 쓰면서 미루는 마음을 다뤘는데, 여기서는 좀 다른 모양입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더 편한 쪽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읽기는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부담은 적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준을 미리 정해두기로 했습니다. 한 번 읽고 나면 일단 덮고, 떠오르는 만큼만 적습니다. 적힌 게 적어도 그냥 둡니다. 적은 양이 지금 제가 아는 양입니다.

적고 나서 자료를 다시 열면 빠진 자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 다시 읽는 것은 처음 읽을 때와 다릅니다. 어디가 비어 있는지 알고 읽으니 그 자리에만 힘이 들어갑니다. 세 번 읽을 때는 스무 쪽 전체를 똑같은 힘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다음 자료에서 해볼 일

이 글을 쓰면서 그 스무 쪽을 다시 꺼냈습니다.

이번에는 한 번만 읽고 덮었습니다. 적어보니 대여섯 줄이 나왔습니다. 세 번 읽고 안다고 생각했던 때보다 초라한데, 그 대여섯 줄은 며칠 뒤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에 읽을 자료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도 같은 방식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한 번 읽고, 덮고, 적고, 다시 열어서 빠진 것만 확인하는 순서로요.

형광펜은 당분간 안 쓰려고 합니다. 그은 자리가 늘어날수록 안다는 느낌만 늘었지 남는 게 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