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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의 연락에 청첩장이 딸려 있었습니다
대학 때 알던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안부를 두어 줄 묻고, 그다음에 이미지 파일이 하나 왔습니다. 청첩장이었습니다.
축하한다고 답을 보냈습니다. 진심이 아니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답장을 보내는 동안 제 머릿속에서 돌아간 건 다른 계산이었습니다. 얼마를 해야 하나. 가야 하나 봉투만 보내도 되나. 이 사람 결혼식에 가면 거기서 또 누구를 만나게 되나.
축하가 먼저 나오고 계산이 뒤따랐으면 좋았을 텐데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며칠 지나서도 그게 걸렸습니다. 결혼하는 사람에게 축하가 아니라 견적이 먼저 떠오르는 상태가 정상인가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 계산이 어디서 오는 건지 좀 알아봤습니다.
호혜성 규범, 받으면 갚아야 한다는 규칙
이 계산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호혜성 규범입니다.
1960년 사회학자 앨빈 굴드너가 정리한 개념인데, 그는 이 규범이 거의 모든 사회에서 발견된다고 봤습니다.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로 아주 단순합니다. 나를 도와준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를 도와준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
굴드너가 흥미롭게 본 지점은 이 규범의 쓰임새입니다. 그는 이것을 관계의 시동 장치라고 불렀습니다. 서로 아무 이력이 없는 두 사람이 신뢰를 쌓기 시작할 때, 한쪽이 먼저 뭔가를 주고 다른 쪽이 갚을 의무를 지는 구조가 관계를 굴러가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 규칙이 얼마나 자동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준 실험도 있습니다. 1971년 데니스 리건은 참가자들에게 그림을 평가하게 했습니다. 옆에는 참가자인 척하는 협조자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한쪽 조건에서는 이 협조자가 쉬는 시간에 콜라를 하나 사다 줬고, 다른 조건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실험이 끝날 무렵 협조자가 부탁을 합니다. 복권을 팔고 있는데 몇 장 사줄 수 있겠냐고요. 콜라를 받았던 쪽이 두 배를 샀습니다. 콜라 한 캔이었는데도요.
주고받은 것의 크기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콜라 한 캔과 복권 여러 장은 값이 다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받은 것이 있으면 갚아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그 계산이 정밀하지도 않습니다. 규칙이 작동하는 것이지 손익을 따지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축의금은 관계를 숫자로 남기는 장부입니다
한국의 축의금은 이 규범을 아주 선명한 형태로 만들어놓은 제도입니다.
봉투에 이름을 쓰고, 접수대에서 명단에 적히고, 그 기록이 남습니다. 나중에 내 차례가 되면 그 명단을 꺼내 보게 됩니다. 누가 얼마를 했는지가 숫자로 적혀 있으니까요.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남는 것은 장부입니다.
그래서 청첩장은 단순한 초대가 아닙니다. 장부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몇 년 연락이 없다가 청첩장이 오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겁니다. 초대가 아니라 정산 요청처럼 읽히니까요.
굴드너가 말한 시동 장치가 한국에서는 아예 기록으로 굳어 있는 셈입니다. 관계를 굴러가게 하는 부채감이 머릿속이 아니라 종이에 적혀 있는 형태요. 편리한 면도 있습니다. 얼마를 해야 할지 헷갈릴 때 기준이 되니까요. 다만 기준이 분명해질수록 그 관계가 무엇으로 이어져 있었는지도 분명해집니다.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 날에 대해 쓰면서도 비슷한 걸 느꼈는데, 관계에 숫자가 끼면 그 숫자가 관계를 대신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 장부를 썼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좀 머쓱해졌습니다. 저도 결혼을 했고, 그때 그 장부를 썼기 때문입니다.
제 결혼식에 온 사람들 중에도 몇 년 만에 연락한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저는 청첩장을 돌리면서 그 사람들이 지금의 저처럼 계산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명단을 만들 때 제가 한 고민은 부를까 말까였지, 이 연락이 상대에게 어떻게 읽힐까가 아니었습니다.
선배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오래 연락 못 한 사람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게 어떻게 보일지 한참 망설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저처럼 명단을 만드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제가 계산한 만큼의 계산을 상대도 하고 있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제 결혼식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그때 저를 두고 지금의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 사람도 결국 봉투를 들고 왔고요. 그러니 저는 이 불편함의 양쪽에 다 서본 셈인데, 한쪽에 있을 때는 다른 쪽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편했던 건 청첩장이 아니었습니다
정리하면 제가 불편했던 건 청첩장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몇 년 동안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은 사이에서 갑자기 정산이 시작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몇 년의 공백을 만든 게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답이 궁색해집니다. 저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이런 겁니다. 저는 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은 내지 않았으면서, 정산 요청이 오자 그게 부당하다고 느꼈던 겁니다.
물론 모든 청첩장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축의금만 필요해서 명단을 훑는 경우도 있을 테고, 그런 자리라면 가지 않는 것도 선택입니다. 다만 그 판단을 하기 전에, 내가 지금 계산하고 있는 게 상대의 의도인지 아니면 내 부채감인지는 구분해볼 만합니다. 매몰비용을 따질 때처럼요.
빚이 남아 있는 동안 관계는 이어집니다
굴드너의 설명에서 제일 오래 남은 건 이 대목이었습니다.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가 서로에게 갚을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
거꾸로 말하면 정산이 끝나는 순간 이어질 이유도 사라집니다. 축의금을 주고받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사이가 실제로 있습니다. 장부가 맞아떨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봉투를 준비하면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합니다. 이건 정산이 아니라 다음에 만날 자리를 하나 남겨두는 일이라고요.
액수를 맞추는 데 신경 쓰다 보면 관계가 거래처럼 느껴지는데, 애초에 딱 맞아떨어지는 액수라는 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콜라 한 캔에 복권 여러 장으로 답한 사람들처럼요. 정확히 갚지 않는 편이, 다시 연락할 구실을 남기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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