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단톡방에 네 글자가 줄줄이 올라오던 저녁에 생각한 것들

mbti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단톡방에 네 글자가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휴대폰이 계속 울렸습니다. 예전 직장 동료들 단톡방이었습니다.

누군가 검사 링크를 올렸고, 사람들이 하나둘 결과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네 글자와 함께 짧은 설명이 따라붙었습니다.

역시 너였구나, 우리 둘이 잘 맞는 이유가 있었네, 그래서 그때 네가 그랬구나. 이런 말들이 오갔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유형 설명을 읽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거 완전 내 이야기라고요.

저도 링크를 눌러봤습니다. 문항이 꽤 많았고, 답하다 보니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은 문항이 계속 나왔습니다. 그때그때 다른데 어떻게 하나를 고르나 싶었습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네 글자였고, 설명은 그럴듯했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이 잠깐 멈췄습니다. 이걸 올려도 되나가 아니라, 이 네 글자가 정말 저인가 싶어서요.

융의 유형론에서 검사지가 나오기까지

이 검사의 뿌리는 칼 융의 심리 유형론에 있습니다. 융은 사람이 세상을 향하는 방향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 판단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융의 글은 검사지가 아니었습니다. 임상 경험과 사색에서 나온 이론이었고, 융 자신도 사람을 깔끔한 칸에 넣을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순수한 유형은 없다는 취지의 말을 여러 번 남겼습니다.

이 이론을 문항으로 옮긴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이십 세기 중반에 미국의 캐서린 쿡 브리그스와 그 딸 이저벨 브리그스 마이어스가 융의 개념을 바탕으로 검사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도록 돕겠다는 뜻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검사는 실험실에서 자료를 모아 쌓아 올린 도구라기보다, 한 이론을 실용적으로 옮겨본 시도에 가깝습니다. 출발점이 그랬다는 게 곧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떤 자리에 쓸 수 있는지를 가늠할 때는 알아둘 만한 사실입니다.

몇 주 뒤에 다시 하면 글자가 바뀝니다

심리 검사를 평가할 때 가장 기본으로 보는 것 중 하나가 재검사 신뢰도입니다. 같은 사람이 시간이 좀 지난 뒤 다시 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오는가입니다.

이 검사에서 반복해서 지적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몇 주 뒤에 다시 검사하면 네 글자 중 하나 이상이 바뀌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보고가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구체적인 비율은 조사마다 달라서 제가 한 숫자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의 상당 부분은 경계선에 있습니다.

점수가 한쪽 끝에 뚜렷하게 치우친 사람은 다시 해도 같은 글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가운데 근처에 있는 사람은 그날 기분이나 문항 해석에 따라 쉽게 반대편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가운데 근처에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성격은 칸보다 눈금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사람의 성격이 정말 두 무리로 갈리느냐는 겁니다.

만약 세상에 외향형과 내향형이 따로 있다면, 점수를 그래프로 그렸을 때 봉우리가 양쪽에 두 개 생겨야 합니다. 가운데는 비어야 하고요.

그런데 실제로 그려보면 가운데가 가장 두툼한 하나의 산이 나옵니다. 아주 외향적인 사람과 아주 내향적인 사람은 양쪽 끝에 얇게 있고, 대부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성격심리학은 성격을 유형보다 연속적인 특성으로 다룹니다. 외향성이 높다 낮다처럼 눈금 위의 위치로 보는 거죠. 널리 쓰이는 다섯 요인 모형이 그런 방식입니다.

칸으로 나누면 경계선에 선 사람의 정보가 사라집니다. 눈금의 한가운데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저 끝에 있는 사람이 똑같은 글자를 받으니까요. 그리고 그 둘은 실제로 꽤 다른 사람입니다.

제가 검사를 하면서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은 문항에 계속 걸렸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는 아마 가운데 근처에 있는 사람이고, 문항은 그걸 담을 칸이 없었던 거죠.

바넘 효과를 쓰면서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설명이 나만의 이야기로 읽히는 과정을 다뤘는데, 유형 설명이 유난히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데에는 이 요소도 섞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재미가 헛된 건 아닙니다

짚어둘 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적은 건 이 검사를 도구로 볼 때의 한계이지, 이걸 즐기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날 단톡방이 오랜만에 시끌시끌해진 게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이 검사를 좋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를 설명할 언어가 생기니까요. 나는 왜 모임이 끝나면 이렇게 기운이 빠질까 하던 사람이, 그런 사람이 나 말고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건 분명 도움이 됩니다.

말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혼자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네 글자로 대신할 수 있으니까요.

밴드왜건 효과를 쓰면서 많은 사람이 하니까 따라가게 되는 마음을 다뤘는데, 유행이라는 게 늘 나쁜 것도 아닙니다. 덕분에 서로를 궁금해할 구실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제가 조심스러워지는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채용이나 팀 배치처럼 사람의 기회가 걸린 자리에서 네 글자가 근거로 쓰일 때입니다. 그런 결정을 받쳐줄 만큼 이 검사가 탄탄하다는 근거는 제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결국 제 네 글자를 올렸습니다

한참 망설이다가 저도 제 결과를 올렸습니다.

바로 반응이 왔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요. 그리고 제가 예전 회사에서 회의 때마다 말없이 메모만 하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도 잊고 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대화가 재미있었습니다. 네 글자가 맞아서가 아니라, 그 글자를 핑계로 십 년 전 이야기가 나와서요.

다만 저는 그날 이후로 말버릇을 하나 바꿨습니다. 나는 무슨 형이라서 그렇다는 말 대신,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편이라고 말합니다. 조금 길지만 훨씬 정확합니다.

며칠 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가 웃었습니다. 당신은 검사 안 해도 알겠다고요. 사람 많은 데 다녀오면 삼십 분쯤 아무 말 안 하고 앉아 있잖아, 하고요.

그 말이 어떤 네 글자보다 정확했습니다. 오래 같이 산 사람의 관찰에는 문항이 필요 없더군요.

이 글은 널리 쓰이는 성격 검사의 배경과 한계를 찾아본 개인적인 기록이며, 성격이나 진로 문제로 깊은 고민이 있다면 심리 검사를 다루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