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유형 신화, 우리 애는 시각형이라는 말이 오가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학습 유형 신화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우리 애는 시각형이라서요

딸아이 반 학부모 모임이 학기 초에 있었습니다. 공식 순서가 끝나고 몇 분이 남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분이 요즘 아이 공부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설명을 들려주면 금방 흘려버린다고요.

그러자 다른 분이 대뜸 말했습니다. 그건 그 아이가 시각형이라서 그렇다고요. 우리 애도 시각형이라 말로 하면 하나도 안 들어가는데 그림이나 표로 보여주면 바로 알아듣는다고 했습니다.

옆에 계시던 분은 자기 아이는 청각형이라 소리 내서 읽어야 외워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아들 얼굴이 떠올랐거든요. 그러고 보니 아들도 말로 설명하면 딴 데를 봅니다.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면 그제야 눈이 돌아오고요.

집에 오는 길에 아들은 무슨 형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 분류가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제가 모른다는 걸 알았습니다.

몇 년째 아무렇지 않게 쓰고 들어온 말인데도요. 그날 밤에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익숙하고 그럴듯한 분류

학습 유형이라는 말은 교육 현장에서 오래 쓰여왔습니다. 시각형, 청각형, 몸으로 익히는 유형처럼 나누는 방식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그 밖에도 분류 방식은 수십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핵심 주장은 두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사람마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선호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선호에 맞춰 가르치면 더 잘 배운다는 것입니다.

앞쪽은 그리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어떤 방식이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실제로 많으니까요. 저만 해도 지도를 보는 편이 설명을 듣는 것보다 편합니다.

문제는 뒤쪽입니다. 선호에 맞춰 가르치면 실제로 더 잘 배우느냐는 주장이요. 연구자들은 이 부분을 따로 떼어 부릅니다. 맞춤 가설이라고요.

바넘 효과를 쓰면서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설명을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다뤘는데, 유형 분류는 그 자리를 잘 파고듭니다. 시각형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동안 그림을 보고 이해했던 순간들만 줄줄이 떠오르니까요.

검증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맞춤 가설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실험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먼저 사람들을 유형별로 나눕니다. 그다음 유형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갈라서, 한쪽은 그림 위주로 가르치고 다른 쪽은 말 위주로 가르칩니다. 마지막에는 모두에게 같은 시험을 봅니다.

이때 맞춤 가설이 맞다면 결과가 엇갈려야 합니다. 시각형은 그림으로 배웠을 때 성적이 높고, 청각형은 말로 배웠을 때 성적이 높아야 합니다. 어느 한쪽 방식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유형마다 유리한 방식이 갈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2008년에 해럴드 패슐러와 마크 맥대니얼, 더그 로러, 로버트 비요크가 이 주제의 연구들을 모아 정리한 글을 냈습니다. 이들이 찾아본 결과, 이런 설계를 제대로 갖춘 연구 자체가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설계를 갖춘 소수의 연구들에서는 엇갈리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맞춤 가설과 어긋나는 쪽이었습니다.

학습 유형에 관한 글이 그토록 많은데도 정작 핵심 주장을 겨눈 연구는 드물었다는 대목이 저는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널리 믿어지는 것과 확인된 것 사이의 거리가 꽤 멀었던 셈입니다.

선호를 묻는 설문과 실제로 더 잘 배웠는지를 재는 시험은 전혀 다른 일인데, 그동안 앞엣것만 부지런히 해온 셈이기도 하고요.

선호가 가짜라는 뜻은 아닙니다

짚어둘 게 있습니다.

근거가 없다는 말은 유형에 맞춰 가르쳐도 더 나아지지 않더라는 뜻이지, 사람마다 선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림이 편한 사람은 실제로 그림이 편합니다. 그 느낌 자체를 부정할 일은 아닙니다.

또 내용에 맞는 방식이 있다는 것도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도를 배울 때는 지도를 보는 게 낫고, 발음을 배울 때는 소리를 듣는 게 낫습니다. 이건 배우는 사람의 유형이 아니라 배우는 내용이 정하는 문제입니다.

여러 방식을 섞어서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보여주고 들려주고 직접 해보게 하는 쪽이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대체로 낫습니다. 다만 그게 유형에 맞췄기 때문에 좋은 것인지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덧붙여,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정리가 영원히 확정된 판결은 아닙니다. 제대로 설계된 연구가 여전히 많지 않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들에게 붙일 뻔한 이름

그 뒤로 저는 아들에게 무슨 형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과목마다 다르게 해봤습니다. 수학 문제는 소리 내서 읽게 하고, 사회는 지도를 펴놓고 짚어가며 했습니다. 받아쓰기는 그냥 손으로 여러 번 쓰게 했고요.

해보니 아들은 말로 설명할 때 딴 데를 보는 게 아니라, 설명이 길어지면 딴 데를 봤습니다. 짧게 끊어 말하면 잘 들었습니다. 유형의 문제가 아니라 길이의 문제였던 겁니다.

그림으로 보여줘도 복잡하면 똑같이 눈이 풀렸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유형에 맞춰줬다고 믿었던 순간들은 사실 제가 설명을 짧게 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라벨 효과를 쓰면서 붙여진 이름이 사람을 그 이름 쪽으로 끌고 간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아이에게 시각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듣는 연습을 아예 접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안 되는 애라고 하면서요.

다음 모임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한 학기 뒤에 학부모 모임이 또 있었습니다. 그날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커피 마시며 서로 걱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건 근거가 없다고 끼어드는 건 영 아니다 싶었거든요.

다만 집에 와서 아내에게는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듣더니 그럼 우리 애들은 무슨 형이냐고 웃으며 물었습니다.

밥 먹고 나서가 제일 잘 되는 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 며칠 지켜보니 그게 제일 정확한 분류였습니다.

배가 부르고 잠이 덜 부족한 날에는 두 아이 다 잘했습니다. 그림이든 말이든 상관없이요.

이 글은 교육 현장에 널리 퍼진 주장 하나를 제 육아에 비춰본 개인적인 기록이며, 아이의 학습에 어려움이 뚜렷하다면 관련 전문가나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