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합의 효과, 당연하다고 말할 때 제가 놓친 것

거짓합의효과 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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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렇게 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거래처 담당자와 통화를 하다가 이 말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일정 하나를 두고 서로 다르게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저희 쪽에서 확인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상대는 저희가 먼저 정리해서 보내주는 순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쪽도 그걸 말로 확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통화를 끊고 나서 좀 억울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왜 당연하다고 하나 싶었거든요.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다만 당연하다는 단어에는 상대가 상식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슬쩍 들어갑니다. 그게 걸린 겁니다.

그러다 제가 그 주에 보낸 메일을 열어봤습니다. 거기에도 “당연히”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쓴 문장이었습니다.

거짓 합의 효과, 내 생각이 다수라고 믿는 버릇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거짓 합의 효과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선택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할 거라고 실제보다 높게 잡는 경향을 말합니다.

1977년 리 로스 연구진이 이걸 보여준 실험이 유명합니다. 대학생들에게 앞뒤로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메고 30분쯤 캠퍼스를 돌아다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남들 눈에 띄는 일이니 응하는 사람도 있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핵심은 그다음 질문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할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광고판을 메겠다고 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 중 62퍼센트쯤이 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봤습니다. 거절한 학생들은 33퍼센트만 그럴 거라고 봤습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두 집단이 두 배 가까이 다른 답을 내놓은 겁니다.

어느 쪽도 실제 비율을 알 수 없었습니다. 각자 자기가 한 선택을 기준으로 세상을 추정했을 뿐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기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의 성격을 더 강하게 규정했습니다.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럴 만하니까”로 넘어가고, 다른 선택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성격이라서”라고 설명한 겁니다. 내 쪽은 상황이고 상대 쪽은 성격이 되는 구조입니다.

왜 내 쪽이 평범해 보이는가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제가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은 저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과 주로 이야기합니다. 그 표본을 놓고 세상을 추정하면 제 방식이 평범해 보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선택에 대한 이유가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하라면 서너 가지는 바로 나옵니다. 반대편을 고른 사람의 이유는 그만큼 선명하지 않습니다. 떠올리려면 한참 걸리고, 떠올려도 어딘가 억지스럽습니다. 잘 떠오르는 쪽이 더 흔해 보이는 건 기억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라쇼몽 현상을 쓰면서 같은 일을 두고 기억이 갈리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거짓 합의 효과는 그보다 한 단계 앞에 있습니다. 기억이 갈리기 전에, 애초에 무엇이 기본값인지에 대한 감각이 서로 다른 상태입니다.

저도 같은 문장을 쓰고 있었습니다

메일을 다시 읽고 나니 억울함이 줄었습니다.

저는 상대가 “당연히”라고 말한 것에 발끈했는데, 저도 같은 단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 메일의 그 문장은 상대에게 정확히 같은 인상을 줬을 겁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기 기준을 통보하면서 그게 통보인 줄 몰랐습니다.

일하는 사이에서 이런 어긋남은 대개 큰 사건이 되지 않습니다. 한 번 확인하면 풀리니까요. 다만 그 확인을 안 하고 넘어간 것들이 쌓이면 나중에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굳습니다. 실제로는 기본값이 달랐던 것뿐인데요.

실험에서 본 그 구조가 여기서도 돕니다. 저는 제 순서가 상황상 자연스러웠다고 여기고, 상대의 순서는 그 사람 일하는 방식이 그래서라고 여깁니다. 상대도 정확히 반대로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연히”를 줄여보려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메일을 보내기 전에 “당연히”와 “원래”라는 단어를 한 번 찾아봅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정말 합의된 사항인지, 아니면 제 기준인지 구분해보려고요.

합의된 사항이면 그대로 두면 됩니다. 제 기준이면 문장을 바꿉니다. “당연히 이렇게 진행됩니다” 대신 “저는 이렇게 알고 있는데 맞을까요”로요. 글자 수는 늘지만 통화 한 번을 아낍니다. 그리고 상대가 다르게 알고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나중에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조망수용을 아이에게 설명하면서 상대 자리에서 보기를 이야기했는데, 정작 저는 일할 때 그걸 잘 안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모든 문장을 이렇게 바꾸면 대화가 늘어집니다. 확인할 것마다 되묻는 사람은 그것대로 피곤합니다. 확인이 필요한 자리는 대개 정해져 있습니다. 순서와 책임과 기한, 이 세 가지가 걸린 문장만 봐도 대부분 걸러집니다. 이번에 어긋난 것도 순서였습니다.

기본값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거짓 합의 효과가 알려주는 건 남들이 나와 다르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그 차이를 얼마나 못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상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상대도 저를 그렇게 봤을 겁니다. 둘 다 자기 쪽이 평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통화에서 어긋난 건 일정이 아니라 기본값이었습니다.

다음 통화에서는 “당연히”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한 번 물어보려 합니다. 무엇을 당연하다고 보고 계신지요. 따지려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묻는 톤이면 대개 상대도 순순히 설명해줍니다. 그 설명을 듣고 나면 이상하던 것이 대개 이상하지 않아집니다.

당연한 것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알고 시작하는 대화가, 같을 거라 믿고 시작하는 대화보다 짧게 끝나더군요.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