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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런 사람이야
누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약속에 늦었고, 그걸 두고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렸으니까요. 늦는 사람은 늦는 사람이고, 그건 성격이라는 이야기요.
집에 오는 길에 그날 제가 늦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때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차가 막혔고, 앞 일정이 늘어졌고, 나오려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이유가 셋이나 있었습니다.
같은 행동인데 설명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남의 지각에는 이유가 안 붙고 제 지각에는 이유가 붙었습니다.
기본적 귀인 오류, 상황을 덜 세고 성격을 더 셉니다
이 기울기에 붙은 이름이 기본적 귀인 오류입니다. 1977년 리 로스가 이 표현을 정리했습니다. 남의 행동을 설명할 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그 사람의 성향을 과대평가하는 쪽으로 기운다는 뜻입니다.
이 기울기를 보여준 고전적인 실험이 1967년에 나왔습니다. 에드워드 존스와 빅터 해리스가 한 것입니다.
참가자에게 다른 학생이 썼다는 짧은 글을 읽게 합니다. 당시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사안을 두고 한쪽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을 읽은 다음, 이 글을 쓴 사람이 실제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은지 평가하게 합니다.
핵심은 조건을 나눈 데 있습니다. 한 조건에서는 글쓴이가 어느 쪽으로 쓸지 직접 골랐다고 알려줍니다. 다른 조건에서는 어느 쪽으로 쓰라고 지정받았다고 알려줍니다. 동전을 던져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참가자가 알고 있는 셈입니다.
고른 경우에 그 글을 그 사람 생각으로 읽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다른 조건이었습니다. 지정받아 썼다는 걸 알려줬는데도 참가자들은 여전히 글의 방향대로 글쓴이의 생각을 짐작했습니다. 정도가 줄기는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행동을 다 설명해주는데도 사람들은 그 설명을 충분히 쓰지 않았습니다. 참가자들이 지시 사항을 못 들은 것도 아닙니다. 알고 있었고, 그 정보를 판단에 넣기도 했습니다. 다만 넣은 양이 모자랐습니다. 지정받아 쓴 글이면 글쓴이의 생각을 알 방법이 없으니 양쪽 조건의 평가가 같아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이 오래 인용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애매한 상황에서 사람을 오해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 완전히 설명된 뒤에도 오해가 남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
왜 이렇게 기우는지에 대한 설명 중 하나는 시야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남을 볼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처한 사정은 눈에 안 보입니다. 차가 막혔는지 전화가 왔는지는 제 화면 밖에 있습니다. 그러니 설명을 만들 때 손에 잡히는 재료가 사람뿐입니다.
제가 저를 볼 때는 반대입니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은 제 앞의 상황입니다. 정작 저 자신은 안 보입니다. 그러니 설명이 상황 쪽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이건 이기심의 문제라기보다 자리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앉은 자리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고, 보이는 것으로 설명이 만들어집니다.
라쇼몽 현상을 쓰면서 같은 일을 두고 기억이 갈리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여기서는 기억 이전에 설명의 재료가 갈립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잡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만드니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본적 귀인 오류가 값을 치르는 자리
이 기울기가 비싸지는 자리는 사람을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
한 번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고 정하면 그다음이 편해집니다. 설명을 다시 만들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문제는 그 판단이 그 사람에게 붙어 다닌다는 점입니다. 다음에 그 사람이 제때 와도 그건 예외가 되고, 또 늦으면 역시 그렇다는 확인이 됩니다.
반대 방향도 있습니다. 구조가 만든 결과를 개인의 성향으로 읽으면 구조는 그대로 남습니다. 여럿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그건 사람들의 성격이 비슷해서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 자리를 거쳐간 사람이 여럿인데 결과가 매번 비슷하다면, 바뀐 것은 사람이고 안 바뀐 것은 자리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값이 붙습니다. 남은 성격으로 보고 나는 상황으로 보는 기울기는 반대로 뒤집히기도 합니다. 내가 잘 안 풀린 일을 두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정리해버리면, 그때는 바꿀 수 있는 조건들이 전부 시야에서 빠집니다.
악의 평범성을 쓰면서 다룬 것도 결국 이 문제였습니다.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야 나쁜 일이 벌어진다고 보면, 평범한 사람이 놓이는 자리를 안 보게 됩니다.
아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상황으로 설명하자는 결론은 아닙니다.
성향은 실제로 있고, 그것으로 설명되는 일도 있습니다. 반복해서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생깁니다. 모든 것을 사정으로 돌리면 책임을 물을 자리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이 기울기는 알아차린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저도 다음번에 누가 늦으면 또 성격부터 떠올릴 겁니다. 설명은 재료가 있는 쪽으로 만들어지고, 제 화면에는 여전히 사람만 보일 테니까요.
다만 한 가지는 해볼 수 있습니다. 판단이 서기 전에 이 사람에게 제가 모르는 사정이 몇 개나 있을 수 있는지 세어보는 것이요. 제가 늦은 날에는 셋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그 정도는 있었을 겁니다.
그날의 한마디로 돌아가서
원래 저런 사람이라는 말에 제가 고개를 끄덕였던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제가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날 늦었다는 사실 하나였습니다. 그 하나로 성격을 짐작했고, 그 짐작에 동의까지 했습니다.
말을 꺼낸 사람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도 제 자리에서는 같은 말을 했을 겁니다. 다만 그 자리에 없던 사람에 대해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났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 말이 나올 때 한 박자 늦게 끄덕입니다. 반박까지는 잘 못 하겠고, 동의를 조금 미루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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