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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령 공지가 뜬 날, 옆자리 동료가 제일 먼저 한 말이 이거였습니다.
“몇 년생이래?”
저도 이미 검색해본 뒤였습니다. 세 살 어렸습니다.
몇 년생이래
그 질문이 왜 제일 먼저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좀 이상합니다. 새 팀장이 어떤 사람인지, 뭘 해온 사람인지, 우리 팀을 어떻게 끌고 갈 생각인지가 먼저여야 맞는데 아니었습니다. 저도 동료도 나이부터 봤습니다.
그러고는 둘 다 아무 말 안 했습니다. 뭔가 더 말하면 이상해질 것 같았거든요.
처음 몇 주는 별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제가 꽤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고, 능력이 우선이지 않냐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데서 자꾸 걸렸습니다. 회의에서 제 안이 반려됐을 때, 반려된 것보다 반려한 사람이 신경 쓰였습니다. 메신저로 지시를 받으면 답장을 쓰기 전에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존댓말은 당연히 썼는데, 쓸 때마다 그걸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습니다.
전에 있던 팀장에게는 이런 게 없었습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그냥 업무였는데, 이번엔 말 뒤에 뭔가가 한 겹 더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상대는 똑같이 말했을 텐데 받는 쪽이 달라진 겁니다. 그때는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그 사람 말투 탓을 좀 했습니다.
나이가 먼저 궁금해지는 이유
사람은 자기 위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재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절대 눈금이 없으니, 주변 사람을 눈금으로 씁니다. 이걸 사회적 비교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무나 눈금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비교는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훨씬 강하게 일어난다고 설명됩니다. 업종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은 별로 안 아픕니다. 그런데 같은 회사, 비슷한 연차, 비슷한 출발선에 있던 사람의 소식은 다릅니다. 조건이 비슷할수록 “저 자리에 내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계산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그 유사성을 재는 가장 손쉬운 눈금입니다. 경력이나 실적은 알아보려면 품이 드는데 나이는 한 줄이면 끝나니까요. 그래서 발령 공지를 보고 나이부터 찾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나와 얼마나 비교 가능한 사람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나이는 편리한 이유가 되어줍니다. “젊은 사람이 팀장이라 적응이 좀”이라고 말하면 다들 알아듣고 넘어갑니다. 진짜 이유를 꺼낼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게다가 이 말은 듣는 사람도 편합니다. 위로하기도 쉽고 맞장구치기도 쉬우니까요. 그래서 술자리에서 이 주제는 늘 잘 굴러갑니다. 다들 진짜 이야기는 안 하면서 한참을 떠들 수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비교하고 있던 것
몇 달이 지나서야 인정했습니다. 제가 불편했던 건 그 사람이 어려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제가 없어서였습니다.
나이가 문제였다면 두 살 많은 팀장이 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어야 하는데,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편했습니다. 차이는 나이가 아니라 계산이었습니다. 세 살 어린 사람이 그 자리에 가면 “나도 갈 수 있었던 자리”라는 문장이 성립하고, 그 문장이 성립하는 순간 제가 못 간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설명이 안 되니까 불편했던 거고요.
그런데 나이 탓으로 두면 설명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좀 이상해진 거니까요. 요즘은 승진이 빠르다느니 조직이 젊어졌다느니 하는 말로 마무리하면 됩니다. 그 말들이 틀린 것도 아니고요. 다만 그게 제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 실패했을 때 쓸 변명을 미리 만들어두던 습관을 쓴 적이 있는데, 이것도 결이 같았습니다. 만들어둔 게 아니라 마침 굴러들어온 변명이었다는 차이만 있고요.
어린 상사에게 존댓말을 쓰면서 알게 된 것
바꾼 건 세 가지입니다.
먼저 나이를 검색하는 걸 그만뒀습니다. 새로 오는 사람이 있으면 예전엔 이름부터 넣어봤는데, 요즘은 안 합니다. 알게 되면 알게 되는 거고 굳이 먼저 찾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숫자를 모르면 비교할 눈금이 없어서, 그 사람을 그냥 그 사람으로 보게 되더군요.
두 번째는 불편할 때 이름을 붙여보는 겁니다. “적응이 안 된다”로 뭉뚱그리지 않고, 지금 정확히 뭐가 불편한지를 한 문장으로 만들어봅니다. 대부분은 “내가 저기 없어서”로 정리됐습니다. 문장으로 만들고 나면 좀 시시해집니다. 뭉쳐 있을 때보다 다루기 쉬워지고요.
세 번째는 좀 실용적입니다. 그 팀장에게 배울 게 뭔지를 하나만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인정하기 싫었는데, 회의를 끊는 방식이 저보다 나았습니다. 결론이 안 나는 논의를 오 분 만에 자르고 다음으로 넘기는 게요. 저는 그걸 못해서 회의가 늘 길어졌습니다. 배울 게 하나 생기니까 그 사람이 눈금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눈금은 나를 재는 도구지만 사람은 그냥 사람이니까요.
나이는 가장 쉬운 이름일 뿐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완전히 편하지는 않습니다. 승진 시즌이 되면 또 계산이 시작될 겁니다.
어제 아들러 책에 대해 쓰면서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문장에 반쯤 반박했는데, 이 일도 결국 거기로 돌아가더군요. 팀장이 어리다는 사실 자체는 저에게 아무 손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제 연봉이 깎인 것도 아니고 일이 늘어난 것도 아닙니다. 손해는 전부 비교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비교는 혼자서는 못 하는 일입니다.
다만 그때 나이 이야기는 안 하려고 합니다. 그건 제 불편에 붙일 수 있는 가장 쉬운 이름이지 정확한 이름은 아니니까요.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게 늘 기분 좋은 일은 아닌데, 적어도 엉뚱한 데 화를 내지는 않게 됩니다.
이 글은 제가 겪은 일을 정리한 내용이며,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여기 나온 이야기를 자신이나 타인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지 마시고, 직장에서의 어려움이 오래 이어져 힘드시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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