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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붙은 문구 앞에서
아이 학원 설명회를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큰길가 건물 이 층 유리창에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의 다중지능을 찾아드립니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밑에는 여덟 개쯤 되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각각에 음악, 운동, 언어 같은 말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신호가 바뀔 때까지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마음 한쪽이 솔깃했습니다. 우리 아이한테도 잘하는 게 하나쯤은 있을 텐데, 그걸 찾아준다니까요. 학교 성적으로만 아이를 보는 게 답답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이 걸렸습니다. 검사를 하면 여덟 개 중 어느 칸에 들어가는 건가. 그 칸은 몇 년쯤 유효한 건가. 그리고 그 칸이 아이에게 무슨 도움이 되나.
집에 와서 그 이름의 출처부터 찾아봤습니다.
지능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제안
다중지능은 미국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1983년에 낸 책에서 내놓은 제안입니다.
당시 지능 연구의 주류는 지능을 하나의 큰 능력으로 보는 쪽이었습니다. 여러 인지 검사 점수가 서로 같이 움직이는 현상이 반복해서 관찰됐고, 그 공통분모를 일반 지능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드너는 그 그림이 너무 좁다고 봤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독립적인 여러 갈래라는 겁니다.
그가 처음 제시한 갈래는 언어, 논리수학, 공간, 음악, 신체운동, 그리고 남을 이해하는 능력과 자기를 이해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나중에 자연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갈래가 더해졌고요.
근거로는 뇌 손상 사례가 자주 언급됐습니다. 어떤 능력만 망가지고 다른 능력은 멀쩡한 환자들이 있으니, 능력이 하나가 아니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한 가지 분야에서만 유난히 뛰어난 사람들의 사례, 그리고 문화마다 귀하게 여기는 능력이 다르다는 관찰도 함께 제시됐습니다.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거들입니다.
학교가 이 제안을 반긴 이유
이 제안은 학계보다 교육 현장에서 훨씬 뜨겁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유는 짐작이 갑니다. 시험 점수 하나로 아이를 줄 세우는 게 불편했던 교사와 부모에게, 아이마다 다른 재능이 있다는 말은 반가운 이야기였으니까요. 저도 유리창 앞에서 솔깃했던 게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수업에 노래와 그림과 몸 움직임을 들여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자체로 나쁠 게 없는 변화였고요.
교과서와 참고 자료에도 이 말이 빠르게 들어왔습니다. 제가 학부모 모임에서 들은 설명도 대개 이 틀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말이 상품이 되면서 벌어졌습니다. 검사지가 생기고, 아이를 어떤 지능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 유형에 맞춘 프로그램을 파는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라벨 효과를 쓰면서 붙은 이름표가 사람의 행동을 그 방향으로 끌어간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아이에게 붙는 이름표는 특히 오래갑니다. 너는 음악 쪽이라는 말이 너는 계산 쪽은 아니라는 말로 읽히기 쉽고요.
검증 가능한 이론으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학계의 반응은 교육 현장과 달랐습니다.
가장 자주 나온 지적은 근거가 이론을 받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지능이 서로 독립적이라면 각 지능을 재는 검사 점수들이 서로 상관이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 재보면 대체로 양의 상관이 나옵니다. 독립적이라는 전제가 흔들리는 셈입니다.
지능이라는 말을 쓴 것 자체가 논란이었습니다. 음악이나 운동에서 뛰어난 능력을 재능이라고 부르면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는데, 지능이라고 부르는 순간 기존 지능 개념과 같은 잣대로 검증받아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이 이론은 검증하기 어려운 형태였습니다. 갈래를 나누는 기준이 실험 자료보다 저자의 판단에 기대어 있었고, 어떤 결과가 나오면 이 이론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연구자는 이걸 실증 이론이라기보다 교육에 대한 관점이나 제안으로 보자고 했습니다.
가드너 본인도 선을 그었습니다
짚어둘 게 있습니다.
가드너 본인이 자기 이론이 쓰이는 방식에 여러 번 선을 그었습니다. 특히 다중지능이 학습 유형과 같은 것처럼 이야기되는 걸 분명히 경계했습니다.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지능은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고, 학습 유형은 사람이 선호하는 학습 방식을 가리키는 별개의 개념이라는 겁니다. 시각형이니 청각형이니 하는 분류에 맞춰 가르치면 더 잘 배운다는 주장은 검증에서 지지를 받지 못했고, 가드너는 자기 이론이 거기에 엮이는 걸 원치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이론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아이를 하나의 숫자로만 보지 말자는 문제 제기 자체는 충분히 값졌고, 실제로 교육 현장의 시야를 넓혔습니다.
다만 그 제안과, 검사지를 팔면서 붙이는 약속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지능 유형을 알면 성적이 오른다는 주장을 받쳐줄 근거는 제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을 다시 지나며
며칠 뒤 같은 길을 다시 지났습니다. 현수막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멈춰 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날 저녁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뭐가 제일 재미있냐고요.
아들은 종이접기라고 했고, 딸은 친구랑 이야기 만들어서 그림 그리는 거라고 했습니다. 둘 다 검사지가 필요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한마디 보탰습니다. 그건 이번 달 이야기고 지난달엔 둘 다 곤충이었다고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건 계속 바뀌는데, 검사 결과는 한 번 나오면 종이에 박혀 있습니다.
아이의 조망수용 발달을 쓰면서 아이가 남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는 과정을 다뤘는데, 그때도 결국 제가 한 건 관찰이었습니다. 옆에서 오래 보는 것 말고 아이를 아는 지름길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 주 주말에 종이접기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여덟 개 동그라미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고,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들이 학 접는 법을 익히더니 제 책상에 하나 올려두고 갔습니다. 날개가 좀 삐뚤었습니다. 그게 어떤 지능인지 저는 끝내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교육 현장에서 널리 인용되는 이론의 근거를 찾아본 개인적인 기록이며, 아이의 학습이나 발달에 대해 판단이 필요하다면 관련 전문가나 의료기관과 상의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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