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과잉확신,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

사후과잉확신 섬네일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회의가 끝나고 제가 한 말

몇 달 전 회의에서 두 안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딱히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둘 다 그럴듯해 보였고 판단이 안 섰습니다.

회의는 한 시간쯤 이어졌습니다. 양쪽 다 근거가 있었고, 반대쪽 이야기를 들으면 그쪽도 맞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한쪽으로 정해졌고, 몇 주 뒤에 그 선택이 잘 안 풀렸습니다.

그때 제가 한 말이 이겁니다. 그럴 줄 알았어.

말하고 나서 좀 이상했습니다. 저는 그날 회의에서 아무 의견도 안 냈습니다. 판단이 안 서서 가만히 있었던 사람인데, 몇 주 만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하는 순간에는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게 더 이상했습니다.

사후과잉확신, 결과가 기억을 다시 씁니다

이 현상에 붙은 이름이 사후과잉확신입니다.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 일이 처음부터 예상 가능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합니다.

1975년 바루크 피시호프가 이걸 실험으로 보였습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참가자들에게 짧은 이야기를 읽게 합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가능한 결말이 넷쯤 됩니다. 한 집단에게는 그중 어느 것이 실제 결말이었는지 알려주고, 다른 집단에게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게 각 결말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지 매기게 합니다.

결과를 들은 사람들은 그 결말의 확률을 뚜렷하게 높게 매겼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읽었는데도 그렇습니다. 이야기에 담긴 정보는 양쪽이 똑같았으니, 달라진 것은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던 결말 하나뿐이었습니다. 심지어 결과를 모르는 사람처럼 판단해달라고 부탁해도 잘 안 됩니다.

피시호프는 이 과정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슬금슬금 스며드는 결정론이라는 뜻의 표현이었습니다. 결과를 아는 순간 그 결과로 이어지는 단서들만 이야기에서 도드라져 보이고, 다른 방향을 가리키던 단서들은 흐려집니다.

표현이 정확합니다. 확 바뀌는 게 아니라 스며듭니다. 본인은 관점이 바뀌었다는 걸 못 느끼고, 그저 원래 그렇게 보였다고 느낍니다.

기억이 조작되는 게 아니라 재배열됩니다

여기서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회의에서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을 때 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의 때 제가 마음에 걸렸던 대목들이 떠올랐고, 그것들이 지금의 결과와 딱 맞아떨어졌으니까요.

문제는 그날 마음에 걸렸던 것이 그것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반대편이 걸리는 대목도 비슷하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알고 나니 한쪽만 남고 다른 쪽은 안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기억이 지워지는 게 아니라 순서가 다시 매겨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날 있었던 재료는 그대로 있는데, 어느 것이 위로 올라오는지가 달라집니다.

초두효과를 쓰면서 먼저 들어온 정보가 뒤를 물들이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사후과잉확신은 시간이 거꾸로 흐릅니다. 나중에 안 것이 앞의 기억을 다시 배열합니다.

이 편향이 비싸지는 자리

일상에서는 대개 웃고 넘어갑니다. 스포츠 경기 결과를 두고 하는 말이야 아무 손해가 없습니다. 그런데 값이 커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을 평가할 때입니다. 결과가 나쁘게 나온 선택을 두고, 그걸 결정한 사람이 왜 그것도 몰랐냐는 말을 듣게 됩니다. 결정하던 시점에는 안 보였던 것이 지금은 다 보이니까요. 결정한 사람이 가졌던 정보가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정보로 그 사람을 재는 셈입니다.

이게 반복되면 결정을 맡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점점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됩니다. 잘못됐을 때 원래 알 수 있었던 일로 취급받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자기 판단력을 재는 자리입니다. 맞힌 것은 알고 있었던 게 되고 틀린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잘 맞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실제보다 좋아집니다. 더닝 크루거 효과를 쓰면서 다룬 문제와 이어지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배울 것이 사라집니다. 그럴 줄 알았다고 정리하면 그 일에서 새로 얻은 정보가 없는 셈이 됩니다. 실제로는 몰랐던 걸 알게 된 건데, 원래 알고 있었다고 기록되니 남는 게 없습니다.

결과를 모르는 척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편향에서 특히 곤란한 점은 알고 나서도 잘 안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피시호프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결과를 모르는 사람처럼 판단해달라고 부탁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확률은 여전히 높게 나왔습니다. 결과를 머리에서 빼내는 일이 마음먹는다고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안 아는 상태로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영화 결말을 알고 나서 다시 볼 때 처음 볼 때의 긴장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편향은 알아차림으로 고치기 어렵고, 기록으로 우회하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적어두기로 했습니다

방법으로는 하나가 꾸준히 언급됩니다. 판단하던 시점에 적어두는 것입니다.

기억은 결과에 맞춰 다시 배열되지만 글자는 안 바뀝니다. 회의 전에 제가 어느 쪽이 낫다고 봤는지, 무엇이 걸렸는지를 두 줄만 적어두면 나중에 대조할 것이 생깁니다.

대단한 기록일 필요는 없습니다. 결과를 알기 전의 내가 남긴 것이면 무엇이든 됩니다.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시점입니다.

저는 요즘 판단이 갈리는 일이 있으면 휴대폰 메모에 한 줄씩 남깁니다. 어느 쪽이 나을 것 같은지, 확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습니다. 확신 정도를 적는 게 특히 쓸모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 반반이라고 적어둔 일을 두고 제가 확신했다고 기억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아직 몇 개 안 되지만, 몇 달 뒤에 열어보면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나올 자리가 줄어들 것 같습니다.

다만 이걸 남에게 들이대는 용도로 쓰지는 않으려 합니다. 그 사람도 그때는 몰랐을 테니까요. 내 메모는 내가 무엇을 몰랐는지 확인하는 데 쓰는 게 맞지, 남이 무엇을 놓쳤는지 따지는 데 쓸 물건은 아닙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