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단톡방에서 코스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토요일 산행 코스를 정하는 이야기가 동호회 단톡방에서 시작됐습니다. 처음 올라온 제안은 무난했습니다. 완만하고 왕복 세 시간쯤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거기는 작년 봄에도 갔다고 했습니다. 다른 분이 이왕 가는 김에 능선까지 타보자고 했고요. 그 말에 좋다는 반응이 줄줄이 붙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흐름이 한쪽으로만 흘렀습니다. 능선을 탈 거면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게 낫다, 그러면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그래도 우리 회원들이면 그 정도는 다 한다.
한 시간쯤 지나 정해진 코스는 처음 제안보다 훨씬 길고 가팔랐습니다. 저는 그 방에서 계속 이모티콘만 눌렀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제안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릎도 좋지 않고, 그날 저녁에 아이들 데리고 나갈 일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을 꺼내기가 어색해졌습니다.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는 흐름에 혼자 손을 드는 것 같아서요.
모여서 이야기하면 왜 더 기울까
이 흐름에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집단 극화라고 부릅니다.
시작은 좀 엉뚱했습니다. 1960년대 초에 제임스 스토너라는 대학원생이 석사 논문에서 이상한 결과를 봤습니다. 사람들에게 위험이 따르는 선택 상황을 주고 각자 판단하게 한 뒤, 같은 사람들을 모아 토론하고 합의를 보게 했더니 집단의 결론이 개인들의 평균보다 더 모험적인 쪽으로 옮겨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걸 모험 이행이라고 불렀습니다. 집단은 개인보다 과감해진다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연구가 쌓이면서 그림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주제에서는 토론을 거친 뒤에 오히려 더 조심스러운 쪽으로 옮겨가기도 했거든요.
1969년에 세르주 모스코비치와 마리자 자발로니가 정리한 설명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집단은 늘 과감해지는 게 아니라, 원래 기울어 있던 방향으로 더 기운다는 겁니다. 조심스러운 쪽으로 기운 집단은 더 조심스러워지고, 과감한 쪽으로 기운 집단은 더 과감해지고요.
저희 동호회는 원래 좀 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기울기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입니다.
논거가 쌓이고 서로를 곁눈질합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갈래의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고받는 근거에 관한 겁니다. 비슷하게 기울어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오가는 이야기도 대부분 한쪽 근거입니다. 저마다 다른 이유를 들고 오니,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논거를 여럿 듣게 됩니다. 반대쪽 근거는 애초에 방에 잘 들어오지 않고요. 그러니 듣고 나면 원래 생각이 더 단단해집니다.
다른 하나는 남들과 나를 견주는 마음입니다.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사람들은 이 방에서 무엇이 괜찮게 보이는지를 읽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뒤처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능선 이야기를 하면 나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아집니다.
사회적 비교 이론을 쓰면서 사람이 자기 위치를 남을 통해 확인한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단톡방은 그 비교가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자리였습니다.
다원적 무지도 겹칩니다. 저 말고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이 분명 있었을 텐데, 다들 말을 안 하니 각자 나만 그런 줄 알았을 겁니다.
늘 극단으로만 가지는 않습니다
짚어둘 게 있습니다.
집단 극화는 꽤 잘 알려진 현상이지만, 어떤 모임에서든 반드시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구성원들의 생각이 여러 갈래로 갈려 있으면 토론이 오히려 가운데로 모이기도 합니다.
효과의 크기도 상황을 많이 탑니다. 초기 연구들은 주로 대학생에게 가상의 상황을 주고 답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실제 모임에서 실제 결정을 할 때 얼마나 크게 나타나는지는 제가 정리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쏠림이 늘 나쁜 것도 아닙니다. 서로의 근거를 듣고 확신이 깊어지는 건 좋은 결정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 자리에 반대쪽 근거가 아예 들어오지 못할 때입니다.
반대 의견을 먼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산행 때는 제가 먼저 방에 글을 올렸습니다. 코스 후보를 두 개 올리고, 각자 부담스러운 점이 있으면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답이 여러 개 달렸습니다. 무릎이 안 좋다는 분, 그날 오후에 일정이 있다는 분, 초보 회원이 있어 걱정이라는 분.
말을 꺼낼 자리를 만들어주니 나오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방의 기울기가 진짜 모두의 기울기는 아니었던 겁니다.
한 가지 더 해본 게 있습니다. 제안이 올라오면 바로 좋다고 답하지 않고, 이 코스가 제일 힘들 사람은 누구일지 먼저 적어봅니다. 그 한 줄을 적는 동안 제 반응이 조금 느려집니다. 느려진 만큼 방의 속도에 덜 끌려가고요.
요즘은 집에서도 비슷하게 합니다. 가족 외식 메뉴를 정할 때 먼저 손드는 사람 말에 다 같이 몰리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각자 종이에 적어보라고 합니다. 딸이 적은 것과 아들이 적은 것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목소리가 큰 쪽으로 쏠리기 전에 적어두는 게 생각보다 유용했습니다.
그날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결국 그 토요일에는 원래 정해졌던 험한 코스로 갔습니다. 방에서 이미 정해진 걸 뒤집을 용기는 없었거든요.
능선에서 본 풍경은 좋았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여러 명이 말없이 걸었습니다. 앞서가던 분이 중간에 앉아 한참 쉬기도 했고요.
주차장에서 누군가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다음엔 짧은 데로 갑시다, 하고요. 그 말에 다들 웃으면서 동의했습니다. 방에서는 한 사람도 하지 않던 말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니 저녁 약속 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실 그 코스는 처음부터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아내가 그럼 왜 말을 안 했냐고 물었고, 저는 한참 답을 못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단톡방에서 반응이 빠르게 한쪽으로 몰릴 때 잠깐 멈춥니다. 이게 정말 다들 원하는 건지, 아니면 흐름이 만든 것인지 한 번 생각해봅니다.
이 글은 집단 의사결정에 관한 사회심리학 연구를 제 동호회 경험에 비춰본 개인적인 기록이며, 모임 안에서의 압박감이 오래 이어져 힘드시다면 관련 분야 전문가와 이야기 나눠보시기를 권합니다.
- 다중지능 이론, 학원 유리창의 문구 앞에서 잠깐 멈춰 섰습니다 - 10월 8, 2026
- 콰이어트, 혼자 있는 시간이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이었습니다 - 10월 7, 2026
- MBTI, 단톡방에 네 글자가 줄줄이 올라오던 저녁에 생각한 것들 - 10월 7,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