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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가 올라왔고 아무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단톡방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다음 주까지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이 스무 명쯤 있는 방입니다.
한참을 봐도 아무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안 했습니다. 화면을 내려서 확인은 했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답하면 제일 먼저 답하는 사람이 되는 게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했고, 조금 있으면 누가 하겠지 싶기도 했습니다.
읽음 표시는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다들 봤다는 뜻입니다. 본 사람은 늘어나는데 답한 사람은 그대로인 상태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세 시간쯤 뒤에 다시 열어보니 두 명이 답해 있었습니다. 스무 명 중 둘이요.
만약 그 공지가 저에게 개인 메시지로 왔다면 저는 1분 안에 답했을 겁니다. 같은 질문인데 사람 수만 달랐습니다.
링겔만 효과, 사람이 늘수록 한 사람 몫이 줄어듭니다
여기에 붙는 이름이 링겔만 효과입니다. 1913년 프랑스의 농공학자 막시밀리앙 링겔만이 줄다리기를 시키면서 발견했습니다.
혼자 당길 때 한 사람이 내는 힘을 100이라고 하면, 두 사람이 함께 당길 때는 200이 나와야 맞습니다. 실제로는 186이었습니다. 여덟 명이 되자 800이 아니라 392가 나왔습니다. 합계의 절반 수준입니다. 사람을 늘릴수록 총합은 커지지만 한 사람이 내는 몫은 계속 작아졌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총합이 줄어든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덟 명이 당긴 392는 두 명이 당긴 186보다 큽니다. 일은 더 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을 하나 더 넣을 때마다 그 사람이 보태는 양이 계속 작아집니다.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성과를 늘리려는 계산이 어디서 어긋나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링겔만은 이걸 주로 손발이 안 맞아서 생기는 손실로 봤습니다. 여덟 명이 같은 순간에 같은 방향으로 힘을 주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럴듯한 설명이고 실제로 그런 손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보여준 실험이 나중에 나왔습니다.
조율이 아니라 동기의 문제였습니다
1974년 잉엄 연구진이 방법을 하나 고안했습니다. 참가자에게 눈가리개를 씌우고 줄을 당기게 하되, 뒤쪽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당기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그 사람들은 힘을 주지 않았습니다. 소리만 냈습니다.
혼자 당기는 것이니 손발이 안 맞을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힘이 줄었습니다. 두 명이 있다고 믿을 때는 혼자일 때의 90퍼센트쯤, 여섯 명이 있다고 믿을 때는 85퍼센트쯤이었습니다.
같은 결과가 다른 방식으로도 확인됐습니다. 1979년 라타네 연구진은 참가자에게 눈가리개와 헤드폰을 씌우고 소리를 지르게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이 함께 지르고 있다고 믿을 때 참가자는 혼자일 때의 82퍼센트를 냈고, 다섯 명이 더 있다고 믿을 때는 74퍼센트를 냈습니다. 실제로는 아무도 함께 지르지 않았는데도요.
그러니까 문제는 손발이 아니었습니다. 내 몫이 전체에 섞여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힘이 저절로 빠지는 겁니다. 게으름을 피우기로 마음먹어서가 아닙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기가 덜 당겼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제가 바로 그 “누군가”였습니다
단톡방 이야기로 돌아오면, 제가 답하지 않은 이유도 이 근처에 있습니다.
스무 명이 보고 있는 공지에서 제 답장 하나는 전체의 20분의 1입니다. 제가 안 해도 표가 잘 안 나고, 해도 크게 티가 안 납니다. 그 상태에서 저는 누가 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열아홉 명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 방에는 게으른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다들 각자 자리에서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고, 개인 메시지로 물었으면 대부분 금방 답했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스무 명이 모이자 세 시간에 두 명이 됐습니다.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 조건이 바뀐 겁니다.
조용한 퇴사를 다루면서 힘을 빼는 것이 늘 의도적인 선택은 아니라고 썼는데, 여기서도 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게으르게 굴기로 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제 몫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이름이 붙으면 달라집니다
실험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개인의 몫이 드러나면 힘이 덜 빠진다는 것입니다. 눈가리개를 벗기고 누가 얼마나 당겼는지 보이게 하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힘이 빠지는 조건이 익명성이었으니, 익명성을 걷어내면 되돌아오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톡방에서 뭔가를 부탁해야 할 때 방식을 바꿔보려 합니다. “누가 해주실 분 계신가요”라고 던지는 대신 이름을 부르는 쪽으로요. 스무 명에게 던진 질문은 아무에게도 던지지 않은 질문에 가깝습니다.
제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지를 보고 나중에 하자고 미룰 때, 그 판단이 정말 일정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이 많아서인지 한 번 구분해보려 합니다. 떠벌림 효과를 쓰면서 봤던 것처럼, 내가 하겠다고 드러나는 순간 행동이 따라오는 구조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름을 부르는 게 늘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매번 같은 사람만 지목되면 그 사람에게 부담이 몰립니다. 잘 응하는 사람이 계속 불려 나가는 구조가 되면, 그 사람은 얼마 못 가 그 방을 조용히 나가게 됩니다. 부탁을 나누는 것과 떠넘기는 것은 다릅니다.
스무 명이 있는 방에서 제 몫은 얼마인가
결국 링겔만 효과가 말하는 건 사람의 성실함이 아니라 자리의 문제입니다. 같은 사람이 혼자일 때는 100을 내고 여덟 명 속에서는 49를 냅니다. 성격이 바뀐 게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 게으른지를 따지는 것보다, 지금 이 자리가 각자의 몫을 보이게 만드는 자리인지 보는 편이 낫겠다 싶습니다. 회의가 늘어지고 단톡방이 조용한 이유를 사람의 태도에서 찾으면 대개 답이 안 나옵니다. 인원수를 먼저 세어보는 쪽이 빠릅니다.
공지에는 결국 답을 보냈습니다. 세 번째였습니다. 스무 명 중 셋이 되는 데 반나절이 걸렸습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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