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쓸모, 다 기억하는 사람이 겪은 어려움

망각의 쓸모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적어두고도 계속 생각났습니다

해야 할 일이 몇 개 겹친 주가 있었습니다. 잊을까 봐 다 적어뒀습니다.

적어두면 마음이 놓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록을 적은 뒤에도 계속 떠올랐습니다. 일하다가 생각나고, 자기 전에 생각나고, 아침에 눈 뜨면 또 생각났습니다.

이상한 건 제가 그 목록을 믿지 않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적어뒀는데도 머릿속에서 계속 돌려보고 있었습니다. 적는 일이 기억의 부담을 덜어준 게 아니라 하나 더 얹은 셈이었습니다.

그 주가 지나고 나서 목록을 다시 봤습니다. 다섯 개 중 두 개는 안 해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적을 때는 그게 안 보였습니다.

망각이 없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기억을 잘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데는 다들 동의합니다. 그 반대편을 오래 관찰한 기록이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루리야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입니다. 갈라파고스에서 우리말로 나왔습니다. 루리야가 삼십 년 가까이 한 사람을 관찰하고 쓴 책입니다.

그 사람은 신문기자였고, 취재 지시를 받아 적지 않는 것 때문에 지적을 받다가 검사를 받으러 왔습니다. 적지 않아도 다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인은 그게 특별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검사에서 확인된 기억의 양은 보통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 있었습니다. 긴 숫자표를 한 번 보고 외웠고, 몇 년 뒤에 물어도 같은 표를 다시 말했습니다. 어떤 순서로든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루리야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그는 소리를 색으로, 단어를 모양과 맛으로 함께 느꼈습니다. 그래서 정보 하나에 여러 겹의 감각이 붙었고, 그 감각이 기억을 붙들어두는 고리가 됐습니다.

문제는 기억이 아니라 못 지우는 데 있었습니다

책의 뒷부분이 더 오래 남습니다. 이 능력이 그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워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앞에 외운 표가 뒤의 표에 겹쳐 올라왔습니다. 그는 잊는 방법을 찾으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종이에 적고 태워보기도 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읽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단어마다 이미지가 떠올라 문장이 자꾸 끊겼습니다. 비유나 관용구는 특히 어려웠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그림이 먼저 떠버리니 뜻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요약도 힘들었습니다. 이야기의 요지를 말하려면 세부를 버려야 하는데, 그에게는 세부가 전부 같은 무게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 얼굴을 알아보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표정이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자료가 되니 같은 사람으로 묶기가 어려웠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요약하고 알아보고 이해하는 일은 버리는 능력 위에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망각이 기억의 실패가 아니라 기억의 일부인 셈입니다.

고립효과를 쓰면서 여럿 중 하나만 달라도 그것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것도 나머지를 흘려보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잊기 위해 적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제가 바꾼 것은 메모의 목적이었습니다. 기억하려고 적던 것을 잊으려고 적는 쪽으로요.

순서는 이렇게 합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을 다 적습니다. 정리하지 않고 그냥 쏟습니다. 이 단계에서 판단을 섞으면 적는 속도가 느려지고, 느려지면 머릿속에 남습니다.

그다음에 각 줄에 한 가지만 정합니다. 언제 할지입니다. 오늘인지, 이번 주인지, 날짜를 못 정하겠는지요. 날짜를 못 정하는 줄은 따로 빼둡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안 할 것을 고릅니다. 이 단계를 넣기 전까지는 목록이 계속 길어지기만 했습니다. 지우는 칸이 없으면 적는 일은 쌓기만 하는 일이 됩니다.

지울 때 기준은 하나로 정해뒀습니다. 이 일을 안 하면 누가 곤란해지는가입니다. 아무도 안 곤란하면 지웁니다. 그 주에 두 개를 그렇게 지웠습니다.

지우는 게 아까우면 옮기는 칸을 따로 뒀습니다. 언젠가 할 일이라고 적어두는 칸입니다. 여기 들어간 것은 사실상 안 하게 되는데, 그래도 지운 것보다 마음이 편합니다. 몇 달에 한 번 그 칸을 열어보면 대부분 이미 상관없어진 일들입니다.

적은 다음에 덮어야 효과가 납니다

해보니 걸리는 대목은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적어놓고 계속 열어보면 안 적은 것과 비슷해집니다. 저는 처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목록을 확인했습니다. 확인할 때마다 머릿속에 다시 올라오니 잊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는 시각을 정했습니다. 아침에 한 번, 일 끝날 때 한 번입니다. 그사이에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목록 맨 아래에 적기만 하고 위쪽은 안 봅니다.

이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안 보는 동안 불안했습니다. 그 불안이 줄어든 것은 목록이 몇 번 제 역할을 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안 봐도 놓친 게 없다는 경험이 몇 번 쌓이니 손이 덜 갔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목록을 못 믿었던 게 아니라 목록을 안 써봤던 것에 가깝습니다. 적어만 두고 실제로 그것에 맡겨본 적이 없으니 믿을 근거도 안 생겼습니다. 맡겨봐야 믿게 되는데 불안해서 못 맡기고 있었습니다.

푸르스트 현상을 쓰면서 냄새 하나에 옛 기억이 통째로 딸려 온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목록을 여는 일도 비슷한 데가 있었습니다. 한 줄을 보면 그 일에 붙은 걱정까지 같이 올라옵니다.

버리는 칸이 있어야 목록이 굴러갑니다

지금은 목록이 예전보다 짧습니다. 일이 줄어서는 아닌 것 같고, 안 할 것을 고르는 칸이 생겨서인 것 같습니다.

루리야가 관찰한 그 사람은 기억이 부족해서 어려웠던 게 아닙니다. 넘쳐서 어려웠습니다. 제 목록이 저를 불안하게 만든 것도 비슷한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다 들고 있으려니 무거웠던 겁니다.

물론 저는 그 사람과 비교할 처지가 아닙니다. 저는 잘 잊습니다. 다만 잘 잊는 사람도 안 놓으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은 목록을 적고 나서 한 줄을 지우면 그날의 일이 하나 끝난 기분이 듭니다. 안 한 일인데도요. 안 하기로 정한 것과 안 정한 것은 무게가 다릅니다.

글쓴이는 심리학이나 신경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책을 읽고 생활에 대본 기록일 뿐, 기억이나 건강에 대한 판단으로 읽을 내용이 아닙니다. 기억이나 집중에 관해 실제로 걱정되는 변화가 있다면 의료기관에서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