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감 착각, 내가 고르면 더 잘될 것 같은 마음

통제적 착각 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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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힘 버튼을 세 번 눌렀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습니다. 문이 바로 안 닫히길래 한 번 더 눌렀습니다. 그러고도 안 닫혀서 또 눌렀습니다.

문은 원래 닫힐 시간에 닫혔습니다. 제가 세 번 누른 것과 한 번 누른 것 사이에 차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없었을 겁니다.

이상한 건 제가 그걸 모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러 번 눌러도 소용없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손은 갑니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과 버튼을 누르면서 기다리는 것은 다릅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같은데 느낌이 다릅니다. 앞쪽은 시간을 당하는 쪽이고 뒤쪽은 시간에 뭔가를 하는 쪽입니다.

통제감 착각, 손을 대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이 느낌에 붙은 이름이 통제감 착각입니다. 결과가 순전히 우연으로 정해지는 일에서도 내가 관여하면 결과가 좋아질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1975년 엘런 랭어가 이 주제로 여러 실험을 묶어 발표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복권 실험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복권을 한 장씩 팔았습니다. 한 집단에게는 여러 장 중에서 직접 고르게 했고, 다른 집단에게는 그냥 한 장을 건넸습니다. 당첨 확률은 양쪽이 똑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무작위로 정해지니까요.

추첨 직전에 연구진이 참가자들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표를 사고 싶어 하는데 얼마를 받겠느냐고요.

직접 고른 사람들은 평균 8.67달러를 불렀습니다. 받은 사람들은 1.96달러를 불렀습니다. 네 배가 넘는 차이였습니다.

같은 확률의 종이 한 장인데, 고르는 동작이 한 번 들어갔다는 이유로 값이 달라졌습니다. 값을 올려 부른 것은 안 팔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자기가 고른 표에는 남에게 넘기기 아까운 무언가가 붙어 있었던 셈입니다.

랭어는 이런 조건을 여러 개 만들어 비교했습니다. 직접 고르게 하거나, 익숙한 재료를 쓰게 하거나,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들이게 하거나, 연습 기회를 주는 식이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요소들인데, 들어갈 때마다 참가자들의 확신이 올라갔습니다. 실력이 걸린 상황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왜 손을 대면 내 것이 되는가

설명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우연을 다루는 일과 실력을 다루는 일이 뒤섞인다는 점입니다.

실력이 걸린 일에서는 고르고 연습하고 집중하는 것이 실제로 결과를 바꿉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동작에 결과가 따라온다는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연이 걸린 일에도 같은 동작이 끼어들 수 있습니다. 직접 고르고, 익숙한 숫자를 쓰고, 시간을 들여 고민합니다. 동작만 놓고 보면 실력이 걸린 일과 구분이 안 갑니다. 그러니 결과에 대한 감각도 따라옵니다.

초심자의 행운을 쓰면서 처음 잘 풀린 경험이 실력으로 기억되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여기서 이어집니다. 우연을 실력으로 읽는 통로가 하나 더 있는 셈입니다.

통제감 착각이 늘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 착각을 오류라고만 부르기는 좀 아깝습니다. 실제로 쓸모가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관여하면 나아진다는 감각이 있어야 일을 시작합니다. 결과가 다 정해져 있다고 느끼면 준비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면접이든 시험이든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한데, 그걸 정확히 계산하는 사람보다 조금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준비를 더 합니다.

버튼을 누르는 것도 그렇습니다. 문이 더 빨리 닫히지는 않지만 기다리는 동안 제가 덜 답답합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 자체로 불편한 것이라, 손을 움직이는 쪽이 낫기도 합니다.

병원 대기실이나 관공서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릴 때 남은 순번이 화면에 뜨는 것도 비슷한 쪽이라고 봅니다. 순서가 빨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면 기다리는 일이 덜 막막합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게 늘어난 것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구간이 눈에 보이게 된 것뿐인데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값이 붙을 때입니다. 우연이 정하는 일에 돈이나 시간을 더 태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샐리의 법칙을 쓰면서 다룬 것처럼, 잘 풀린 기억만 남으면 그 감각은 더 단단해집니다.

우연인지 실력인지를 먼저 가릅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이 일의 결과가 내 행동에 반응하는가입니다.

반응한다면 더 하는 게 맞습니다. 반응하지 않는다면 더 해도 같습니다. 이 구분이 늘 깔끔하지는 않은데, 대개는 반쯤 섞여 있습니다. 섞여 있을 때는 반응하는 쪽이 어디까지인지를 봅니다.

면접이라면 답변 준비는 반응하는 쪽이고 면접관이 누구인지는 아닙니다. 준비를 더 하는 것은 이익이 있고, 어떤 면접관을 만날지 걱정하는 것은 없습니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어느 쪽에 쓰느냐가 다릅니다.

이 질문이 특히 쓸모 있는 자리는 결과가 나쁘게 나온 다음입니다. 안 된 일을 두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되짚을 때가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애초에 제 행동에 반응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반응하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 몫을 찾으면 찾아지긴 합니다. 다만 그건 사실이라서 찾아진 게 아니라 찾으려고 해서 찾아진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저는 또 누를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적자면 이 구분을 안다고 해서 손이 안 나가지는 않습니다.

며칠 전에도 또 눌렀습니다. 누르면서 이게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알면서 눌렀습니다. 아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른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값이 붙는 자리에서는 한 번 멈춥니다. 돈이 들어가거나 시간이 길어지는 일이면 방금 그 질문을 해봅니다. 이게 내 행동에 반응하는 일인가.

랭어의 실험에서 복권을 고른 사람들이 어리석었던 것도 아닙니다. 고르라고 하니 골랐고, 고른 것에 마음이 붙었을 뿐입니다. 저도 같은 자리에 있었으면 8달러를 불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안 그러겠다는 약속이라기보다, 그런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를 적어둔 기록에 가깝습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