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뇌형 우뇌형, 아들이 받아온 검사지 한 장이 설명이 되어버렸습니다

좌뇌형 우뇌형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아빠, 나는 우뇌형이래

아들이 학교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왔습니다. 문항이 스무 개쯤 있고 맨 아래에 결과를 적는 칸이 있는, 검사지처럼 생긴 종이였습니다.

아들이 그걸 식탁에 펴놓고 말했습니다.

“아빠, 나는 우뇌형이래.”

우뇌형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림 잘 그리고 느낌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누나가 자기는 좌뇌형 같다고 거들었습니다. 계산이 빠르니까요.

아들은 신이 나서 그 종이를 냉장고에 붙였습니다. 며칠 뒤에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막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우뇌형이라서 이런 건 원래 못해.”

그 말에 제가 잠깐 멈췄습니다. 종이 한 장이 아이 안에서 벌써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좌우를 잇는 다리를 끊었을 때 벌어진 일

좌뇌형 우뇌형이라는 말의 뿌리에는 진지한 연구가 있습니다.

1960년대에 로저 스페리와 마이클 가자니가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분리뇌 환자들을 관찰했습니다. 심한 뇌전증을 다루려고 좌우 반구를 잇는 뇌량을 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쪽 시야에만 짧게 단어를 보여주는 실험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른쪽 시야에 보인 단어는 소리 내어 읽는데, 왼쪽 시야에 보인 단어는 말로 못 하면서 왼손으로는 그 물건을 정확히 집어냈습니다.

좌반구와 우반구가 서로 다른 일을 맡고 있고, 다리가 끊기면 서로가 본 것을 모른다는 게 드러난 겁니다. 스페리는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도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기능이 나뉜다는 말이 사람이 나뉜다는 말로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뇌의 어떤 기능이 한쪽에 더 치우쳐 있다는 발견은, 대중에게 전해지는 동안 사람이 좌뇌형과 우뇌형으로 나뉜다는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좌뇌는 논리와 언어와 분석, 우뇌는 직관과 감성과 창의라는 깔끔한 대비가 붙었고요.

깔끔한 대비는 잘 팔립니다. 검사지가 만들어지고, 학습법이 만들어지고, 교육 상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느 쪽인지 알면 그에 맞게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 따라붙었고요.

제가 학생일 때도 이 말을 들었습니다. 우뇌를 깨우면 창의력이 좋아진다는 책이 서점에 잔뜩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가 보여준 건 특정 과제를 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더 바쁜가였지, 어떤 사람이 평소에 뇌의 어느 절반을 더 쓰는가가 아니었습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질문입니다.

라벨 효과를 쓰면서 이름표가 붙는 순간 사람이 그 이름표대로 자기를 설명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우뇌형이라는 세 글자가 제 아들에게 딱 그렇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천 명이 넘는 뇌를 한꺼번에 들여다봤더니

2013년에 미국 유타대학교 연구진이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천 명이 넘는 사람의 휴식 상태 뇌 영상 자료를 모아, 뇌의 여러 영역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움직이는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좌측 연결망이 전반적으로 더 활발하거나 우측 연결망이 더 활발한 경향이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그런 유형이 보이지 않는다는 쪽이었습니다. 개별 기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작동하는 건 그대로 관찰됐지만, 한 사람을 통째로 좌뇌 우세나 우뇌 우세로 분류할 근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일할 때 뇌의 양쪽을 함께 씁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계산을 할 때도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수학 문제를 풀려면 문제의 문장을 읽어야 하고, 도형을 머릿속에 그려야 하고, 답을 적어야 합니다. 한 문제 안에 언어도 공간도 순서도 다 들어 있습니다. 어느 절반만 골라 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좌우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짚어둘 게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좌우 반구에 아무 차이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어를 다루는 일은 대체로 좌반구에 더 치우쳐 있고, 공간을 파악하는 일에는 우반구가 더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편측화 자체는 실재합니다.

분리뇌 연구가 틀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 연구는 여전히 훌륭한 발견이고, 다만 거기서 성격 유형까지 건너뛴 게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뇌 영상 분석 하나가 모든 걸 끝내지도 않습니다. 이런 자료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계속 논의 중이고, 제가 정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도 많습니다.

다만 아이를 좌뇌형과 우뇌형으로 갈라 가르치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제가 찾아본 범위에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검사지를 만든 사람들을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닙니다. 아이의 강점을 찾아주고 싶다는 마음은 저도 똑같이 갖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 마음이 근거보다 앞서 나갈 때가 있을 뿐입니다.

냉장고에서 종이를 떼던 저녁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아이가 알아들을 만큼만 해줬습니다. 뇌는 반씩 나눠 쓰는 게 아니라 통째로 같이 쓰는 거라고요. 그림 그릴 때도 계산할 때도 머리 전체가 일한다고요.

아들은 시큰둥했습니다. 그래도 우뇌형이 더 멋있는데, 하고요.

그 마음도 이해가 갔습니다. 우뇌형이라는 말에는 자유롭고 남다르다는 느낌이 붙어 있으니까요. 아이가 그 느낌을 좋아한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네가 그림을 좋아하는 건 진짜다, 그건 네가 좋아해서 많이 그려봤기 때문이다, 수학이 어려운 것도 진짜인데 그건 뇌 절반 때문이 아니라 아직 덜 해봐서다, 하고요.

골렘 효과를 쓰면서 낮은 기대가 사람의 성취를 실제로 끌어내린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아이가 스스로에게 붙인 기대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원래 못하는 쪽이라는 문장만큼 연습을 빨리 멈추게 하는 말도 드무니까요.

그날 저녁 아들이 냉장고에서 그 종이를 떼어 서랍에 넣었습니다. 버리지는 않더군요. 저도 버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문제집 앞에서 아들이 혼잣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이건 좀 어렵네, 하고요. 우뇌형이라서라는 말은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은 뇌과학 연구가 대중에게 전해지는 과정을 제 집 이야기에 비춰본 기록이며, 아이의 학습이나 발달에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관련 전문가나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