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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세 장에 제 기억이 졌습니다
몇 년 전 일을 두고 같이 있었던 사람과 이야기가 갈린 적이 있습니다.
큰 일도 아니었습니다. 누가 먼저 그 말을 꺼냈는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둘 다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제 근거는 선명함이었습니다. 장면이 눈에 보이듯 떠올랐거든요. 그쪽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자기는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고요.
그러다 그때 찍은 사진 몇 장을 찾았습니다. 별생각 없이 넘겨보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제 기억 중 한 부분이 확실히 틀려 있었습니다. 순서가 아니라 장소가요. 그런데 하필 그 장소가 제 장면에서 제일 선명한 부분이었습니다.
로프터스가 바꾼 것은 동사 하나였습니다
이 문제를 실험으로 보여준 사람이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입니다. 우리말로는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가 번역돼 있습니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은 1974년에 존 파머와 함께 한 실험입니다. 설계가 아주 단순합니다.
참가자 마흔다섯 명에게 교통사고 영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차들이 얼마나 빨랐는지 묻습니다. 질문 문장은 같고 동사만 다릅니다.
동사를 부딪혔다에 해당하는 것으로 물었을 때 평균은 시간당 34마일이었습니다. 박살 났다에 가까운 동사로 물었을 때는 40.8마일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충돌했다가 39.3마일, 접촉했다가 31.8마일로 놓였습니다.
같은 영상을 본 사람들입니다. 새로 본 것도 없었고 다시 본 것도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질문에 쓰인 단어 하나였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없던 것이 보였습니다
두 번째 실험이 더 무겁습니다.
백오십 명을 세 집단으로 나눠 짧은 사고 영상을 보여줍니다. 한 집단에는 박살 났다는 동사로, 한 집단에는 부딪혔다는 동사로 속도를 묻고, 한 집단에는 속도를 아예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뒤에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합니다. 깨진 유리를 봤느냐는 것입니다. 영상에는 깨진 유리가 없었습니다.
박살 났다로 질문받았던 집단에서 봤다고 답한 비율이 32퍼센트였습니다. 부딪혔다 쪽은 14퍼센트, 아무것도 안 물은 쪽은 12퍼센트였습니다.
없던 것이 기억에 들어간 셈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넣은 것은 일주일 전에 한 번 들은 단어였습니다.
로프터스가 이 결과로 정리한 것은 기억이 저장된 파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떠올릴 때마다 다시 구성되고, 구성하는 동안 그사이에 들어온 정보가 섞입니다.
이 실험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참가자들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깨진 유리를 봤다고 답해서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진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 자체의 문제입니다. 본인에게는 본 것으로 남아 있었을 겁니다.
라쇼몽 현상을 쓰면서 같은 일에 대한 기억이 갈리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이 실험은 그 갈림이 어디서 생기는지를 보여줍니다. 각자 다르게 본 것만이 아니라, 본 뒤에 각자 다른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명함은 정확함이 아닙니다
제 기억에서 제일 선명했던 부분이 틀려 있었다는 게 오래 걸렸습니다.
로프터스의 연구들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결과가 이것입니다. 확신의 크기와 정확도가 잘 안 맞습니다. 없던 유리를 봤다고 답한 사람들도 대충 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확신을 느끼는 근거는 장면이 얼마나 뚜렷한지입니다. 그런데 뚜렷함은 여러 번 떠올리면 늘어납니다. 떠올릴 때마다 정리되니까요.
그러니 여러 번 떠올린 기억이 가장 선명하고, 동시에 여러 번 다시 구성된 기억이기도 합니다. 선명함이 오히려 손을 많이 탔다는 표시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이 제일 곤란합니다. 확인할 방법이 선명함뿐인데 그게 신뢰의 근거가 안 됩니다.
초두효과를 쓰면서 먼저 들어온 정보가 뒤를 물들인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기억에서는 나중에 들어온 정보도 앞을 물들입니다.
이 기억을 얼마나 믿고 쓸지 정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억을 근거로 말하려 할 때 몇 가지를 봅니다.
그동안 이걸 몇 번쯤 떠올렸는지부터 생각해봅니다. 자주 꺼낸 기억일수록 손을 많이 탔습니다. 여러 번 정리한 기억은 정리된 판본이라는 걸 감안하고 씁니다.
그 일을 누구에게 이야기했는지도 봅니다. 말하고 나면 문장이 만들어지고, 그다음부터는 그 문장이 기억 자리에 앉습니다. 저는 그 일을 몇 번이나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누가 어떻게 물었는지도 떠올려봅니다. 질문에 들어 있는 단어가 답을 만듭니다. 그때 화났었지라고 물으면 화난 장면이 떠오르고, 어땠어라고 물으면 다른 게 나옵니다.
제일 빠른 건 역시 대조하는 겁니다. 사진이나 메시지, 영수증 같은 것들이요. 저는 사진 세 장으로 십 분 만에 정리됐습니다.
이걸 한다고 기억이 고쳐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기억을 얼마나 믿고 쓸지는 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 번 떠올리고 여러 번 말했고 누가 유도하듯 물어본 기억이라면 근거로 쓰기에 약합니다.
그걸 알면 말투가 달라집니다. 확실하다는 말을 덜 쓰게 됩니다.
그 장소는 아직도 뚜렷합니다
이 확인이 제일 쓸모 있었던 자리는 사람과 다툴 때였습니다.
기억이 갈리면 저는 제 쪽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명했으니까요. 그쪽도 같은 이유로 자기 쪽이라고 했습니다. 둘 다 선명함을 증거로 쓰고 있었는데, 그건 양쪽 다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누가 맞는지를 먼저 정하지 않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부터 찾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두고 넘어갑니다. 예전 같으면 못 넘어갔을 겁니다.
없는데도 정하려고 하면 목소리 큰 쪽이 이깁니다. 기억이 맞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기는 힘이 센 겁니다.
제 장면에서 제일 뚜렷했던 그 장소는 지금도 뚜렷합니다. 틀렸다는 걸 알고 나서도요.
안 고쳐지더군요. 틀린 줄 알면서도 그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냥 그런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법적 증언이나 수사 절차에 관한 내용이 아니며, 저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기억과 관련해 판단이 필요한 일이라면 자격을 갖춘 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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