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비교 이론, 명절에 하필 사촌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

사회적 비교 이론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명절 상에서 제가 계속 흘려듣던 것

명절에 큰집에 가면 상이 두 개 펴집니다. 어른들 상과 저희 상입니다. 저는 이제 어른 축에 들어갈 나이인데도 아직 아래쪽 상에 앉습니다.

그 상에는 사촌들이 앉습니다. 저와 두어 살 터울입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은 사실 잘 안 들립니다. 회사는 어떠냐, 애들은 잘 크냐 같은 질문에는 대충 답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옆에서 사촌이 무심코 던지는 말은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립니다. 이번에 뭘 옮겼다든가, 어디로 이사를 간다든가 하는 이야기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말들이 몇 번 더 재생됩니다. 어른들 말씀은 하나도 안 남았는데 말이죠.

이상한 일입니다. 사촌이 저를 두고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랑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자기 근황을 말했을 뿐인데 제 쪽에서 그걸 붙들고 있는 겁니다.

사회적 비교 이론, 잴 것이 없으면 사람을 자로 씁니다

이 구조를 설명한 사람이 레온 페스팅거입니다. 1954년에 낸 사회적 비교 이론인데, 출발점이 되는 가설이 아주 단순합니다.

첫째, 사람에게는 자기 의견과 능력을 평가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내 판단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가 중요합니다. 그 평가를 할 객관적인 수단이 없을 때,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과 능력에 견주어 자신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키는 줄자로 잽니다. 체중은 저울로 재고요. 그런데 지금 내 삶이 괜찮은 편인지를 재는 도구는 없습니다. 연봉이 얼마면 괜찮은 건지, 아이가 몇 학년에 뭘 하면 잘 크고 있는 건지를 알려주는 기준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숫자 자체로는 높은지 낮은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을 자로 씁니다. 도구가 없어서 생기는 일이지 마음이 못돼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페스팅거는 이걸 인간의 기본 동기 중 하나로 봤습니다.

명절 상은 그 자가 한꺼번에 여럿 놓이는 자리입니다. 평소에는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같은 방에 앉고, 각자 일 년치 근황을 순서대로 꺼냅니다. 자를 대보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습니다.

하필 사촌인 이유

페스팅거의 세 번째 가설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나와 차이가 클수록 그 사람과 비교하려는 경향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교는 아무하고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재벌가 이야기를 뉴스에서 봐도 별 감정이 없고, 전혀 다른 업계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 이야기도 남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너무 멀면 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촌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나이가 비슷하고, 자란 배경이 비슷하고, 출발점이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명절마다 같은 상에 앉았으니 어릴 때 조건이 거의 겹칩니다. 조건이 겹칠수록 정확한 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필 사촌이 걸리는 겁니다. 잴 만한 상대라서요. 어른들 말씀이 안 들리는 이유도 같은 데 있습니다. 그분들은 저와 조건이 너무 달라서 자가 되지 않습니다.

유유상종을 쓰면서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같은 유사성이 여기서는 다르게 작동합니다. 가까이 두고 싶게 만드는 조건이 동시에 견주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 은메달이 덜 기쁜 이유

비교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작동합니다. 나보다 나아 보이는 쪽과 견주는 상향 비교가 있고, 그 반대인 하향 비교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잘 보여준 연구가 1995년 메드벡 연구진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분석입니다. 시상대에 선 선수들의 표정을 분석했더니, 은메달을 딴 선수가 동메달을 딴 선수보다 덜 기뻐 보였습니다.

성적으로는 은메달이 위입니다. 그런데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을 놓친 쪽을 보고 있었고, 동메달리스트는 메달을 아예 못 딸 뻔한 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같은 결과인데 무엇과 견주느냐에 따라 감정이 갈린 겁니다.

명절 상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제 상황은 그대로인데, 옆에서 나온 이야기 하나에 따라 제 자리가 위로도 아래로도 옮겨 갑니다. 차에 타기 전과 후에 제 연봉은 1원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기분은 달라져 있습니다.

상향 비교가 늘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앞선 사람을 보고 따라가려는 힘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다만 그게 자극이 될지 위축이 될지는 그날 내 상태에 달려 있고, 명절 상은 대개 컨디션이 좋은 자리가 아닙니다.

비교가 가리키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내 빈칸입니다

돌아오는 차에서 그 말들이 재생될 때, 저는 사실 사촌을 재고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사촌을 자 삼아 저를 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교를 그만두자는 다짐은 잘 안 됩니다. 페스팅거의 출발점이 그거였으니까요. 잴 도구가 없는 동안에는 남이 자로 계속 쓰입니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자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해볼 만한 건 무엇을 재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쪽입니다. 이사 이야기가 걸렸다면 제가 지금 집에 대해 뭔가 정리하지 못한 게 있다는 뜻입니다. 이직 이야기가 걸렸다면 그쪽이겠고요. 사촌이 열 가지를 말해도 그중 한둘만 남는데, 남는 게 무엇인지가 정보입니다.

걸리는 지점이 곧 제가 답을 못 낸 질문입니다. 그건 사촌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SNS에서 남의 게시물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유를 쓰면서도 비슷한 결론에 닿았는데, 화면에서든 밥상에서든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제 쪽의 빈칸이었습니다.

자를 내려놓는 대신

올해 추석에도 저는 아래쪽 상에 앉을 겁니다. 사촌들도 그대로 있을 거고요.

비교를 안 하겠다는 다짐은 안 하려 합니다. 해봤자 안 되는 다짐이고, 안 되면 그것대로 자책이 붙습니다.

대신 돌아오는 차에서 어떤 말이 재생되는지만 좀 봐두려 합니다. 그게 올해 제가 답을 못 낸 질문의 목록일 테니까요. 사촌은 그 목록을 읽어준 사람이지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심리상담사도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 이 글은 심리학 개념을 참고해 제 경험을 정리한 기록이며,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