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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결심을 세 번 했습니다
저녁에 휴대폰을 덜 보기로 한 적이 있습니다. 세 번쯤 결심했습니다.
첫 번째는 그냥 안 보기로 했습니다. 이틀 갔습니다. 두 번째는 시간을 정했습니다. 아홉 시 이후로는 안 보기로요. 사흘 갔습니다. 세 번째는 사용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켰습니다. 알림은 잘 왔고, 저는 그 알림을 보고 나서도 계속 봤습니다.
세 번 다 같은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손이 닿는 데 있으면 집었습니다. 집으면 봤습니다.
네 번째에 방법을 바꿨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휴대폰을 거실 선반에 올려두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결심은 따로 안 했습니다.
그날부터 달라졌습니다. 제가 독해진 게 아니라 손이 닿는 거리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결심의 크기는 네 번 중 마지막이 제일 작았는데 결과는 그게 제일 나았습니다.
스키너가 말한 것, 행동은 결과가 만든다
이 관점을 가장 세게 밀어붙인 사람이 벌허스 프레더릭 스키너입니다. 1971년에 낸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가 그 주장을 정면으로 편 책입니다.
스키너의 출발점은 조작적 조건형성입니다. 어떤 행동 뒤에 따라오는 결과가 그 행동이 다음에 나올 확률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좋은 결과가 따라오면 늘고, 안 따라오면 줍니다.
여기까지는 실험으로 여러 번 확인된 이야기입니다. 스키너가 논쟁적인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그는 이 원리를 사람의 행동 전체로 넓혔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때 의지나 성격 같은 내면의 원인을 끌어옵니다. 스키너는 그것이 설명이 아니라 이름 붙이기에 가깝다고 봤습니다. 성실해서 성실하게 행동한다는 말은 동어반복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실제 원인은 밖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무엇이 따라왔는지의 이력입니다. 그래서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사람을 다그칠 게 아니라 조건을 바꾸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관점의 실용적인 쓸모는 책임의 방향을 돌려놓는다는 데 있습니다. 안 되는 일을 두고 내가 부족해서라고 정리하면 다음에 할 일이 없습니다. 더 독해지는 것 말고는 손댈 데가 없으니까요. 조건 쪽을 보면 고칠 수 있는 것이 여러 개 나옵니다.
이 주장에는 반론도 많습니다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강한 비판을 받았고 지금도 논쟁이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제목에 있는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라는 말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스키너는 사람에게 내면의 자유의지가 있다는 관념이 오히려 행동을 개선하는 일을 막는다고 봤습니다. 여기에 대해 인간을 환경의 산물로만 다룬다는 비판이 곧바로 나왔습니다.
언어학 쪽에서는 강화만으로 언어 습득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반박이 유명합니다. 아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을 결과의 이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세계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도구로는 꽤 쓸모가 있었습니다. 내 의지가 약하다는 설명이 막다른 길이라는 점, 그리고 조건을 바꾸는 쪽이 실제로 움직인다는 점은 제 경험과 맞았습니다.
라벨 효과를 쓰면서 붙여진 이름이 행동을 따라오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스키너식으로 보면 그 이름도 설명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습니다.
마찰을 어디에 붙일지 정합니다
제가 쓰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줄이고 싶은 행동에는 단계를 더하고, 늘리고 싶은 행동에서는 단계를 뺍니다.
줄이는 쪽부터 보면, 휴대폰은 다른 방에 둡니다. 가지러 가야 하는 한 단계가 붙으면 그 한 단계에서 대부분 멈춥니다. 앱을 지우는 것보다 이쪽이 오래 갔습니다. 지우면 다시 깔면 그만인데, 걸어가는 일은 매번 새로 해야 합니다.
늘리는 쪽은 반대로 합니다. 책을 읽고 싶으면 읽을 책을 펴서 앉을 자리에 둡니다. 책장에 꽂혀 있으면 고르는 단계가 하나 붙고, 고르는 단계에서 휴대폰으로 새버립니다.
운동도 같습니다. 옷을 전날 밤에 꺼내둡니다. 아침에 꺼내는 일이 하나 붙으면 그 사이에 안 할 이유가 자랍니다.
기준은 하나로 잡습니다. 내가 지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먼저 찾는 것입니다. 저는 결심하는 자리에서 지는 게 아니라 손이 닿는 자리에서 졌습니다. 그러니 손이 닿는 거리를 바꾸는 게 맞았습니다.
지는 지점을 찾는 방법도 별게 없습니다. 며칠 동안 무너진 순간만 한 줄씩 적어보면 됩니다. 저는 사흘치를 적고 나서야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홉 시든 열 시든 상관없이 손에 있으면 봤고, 손에 없으면 안 봤습니다. 앞의 세 번은 엉뚱한 것을 고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사람에게는 조심해서 씁니다
혼자에게 쓰는 것과 남에게 쓰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이에게 이 방식을 쓸 때 저는 한 가지를 지키려고 합니다. 조건을 바꾸는 것까지만 하고 결과를 매기지는 않는 것이요. 장난감을 눈에 덜 띄게 두는 것과 잘하면 무엇을 준다고 하는 것은 결이 다릅니다.
보상을 붙이면 당장은 움직입니다. 다만 그 일이 보상을 받기 위한 일이 되면, 보상이 없어질 때 행동도 같이 없어집니다. 원래 하던 일에까지 값을 매겨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보인형 실험을 쓰면서 아이가 본 것을 따라 한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쪽은 결과 없이도 학습이 일어난다는 연구였습니다. 강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결심의 자리를 줄이는 쪽으로
지금 저녁 시간은 예전보다 조용합니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고 한 시간쯤 되찾은 정도입니다.
달라진 것은 제가 저녁마다 싸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 번의 결심은 매일 저녁 한 판씩 붙는 방식이었고, 네 번째는 저녁이 시작될 때 선반에 올려두는 동작 하나로 끝납니다.
스키너의 주장 전체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환경의 결과일 뿐이라는 말은 제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다만 의지를 키우려던 세 번이 실패하고 거리를 바꾼 한 번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음에 또 안 되는 일이 생기면 저는 제 의지를 먼저 의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디서 지는지부터 찾는 편이 빨랐습니다.
이 글은 상담이나 치료와 관련된 조언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 여기 적은 것은 책의 관점을 제 생활에 적용해본 기록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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