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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틀렸는데 말이 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흐름에 대해 제 나름의 예측을 했습니다. 주변에 말도 하고 그쪽으로 시간도 좀 들였습니다.
몇 달 뒤에 그 예측이 어긋났습니다. 제가 말한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때 제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방향은 맞았는데 시기가 좀 이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왜 늦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몇 개 더 만들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 제가 한 것은 정정이 아니었습니다. 예측을 수정한 게 아니라 예측이 틀리지 않게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말이 줄지 않고 늘었다는 게 표시였습니다.
페스팅거가 들어가 본 자리
이런 반응을 현장에서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레온 페스팅거가 동료들과 함께 쓴 「예언이 끝났을 때」입니다. 1956년에 나왔고 우리말로는 2020년에 번역됐습니다.
연구 방법이 특이합니다. 특정한 날짜에 큰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 소규모 집단이 있었고, 연구자들이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 들어가 안에서 관찰했습니다.
이들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였습니다. 그날이 지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요.
상식적인 예상은 믿음을 접는 쪽입니다. 날짜가 정해져 있었고 그 날짜가 지났으니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록된 결과는 달랐습니다. 상당수가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상 밖의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조용히 지내던 사람들이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자기 믿음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반증이 신념을 키우는 다섯 가지 조건
페스팅거는 이 현상을 인지부조화라는 틀로 설명했습니다. 믿음과 사실이 어긋날 때 생기는 불편함을, 믿음을 바꿔서 해결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정리한 조건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그 믿음을 깊이 확신하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 믿음 때문에 이미 중요한 행동을 해놓았어야 합니다. 되돌리기 어려운 것일수록 그렇습니다.
셋째, 그 믿음이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날짜나 숫자처럼 확인 가능한 형태여야 어긋남도 분명해집니다. 넷째, 그 어긋남이 실제로 일어나고 본인도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가 결정적입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지지해주는 상태여야 합니다. 혼자면 믿음을 접기 쉽지만, 옆에서 같이 재해석해주면 유지됩니다.
이 다섯 가지가 갖춰지면 반증이 신념을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키우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 페스팅거의 정리였습니다.
알리기 시작하는 이유
셋째 조건과 다섯째 조건을 이어 붙이면 왜 말이 늘어나는지가 보입니다.
이미 많은 것을 걸어둔 상태에서 틀렸다고 인정하면, 틀린 것 하나만 인정하는 게 아니게 됩니다. 그 믿음으로 한 행동들이 같이 무효가 됩니다. 값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값이 덜 드는 길을 찾습니다. 내용을 조금 고치는 쪽이요. 방향은 맞고 시기만 틀렸다는 식입니다. 저도 정확히 그 문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남을 설득하는 일이 여기에 붙습니다. 동의하는 사람이 늘면 믿음이 버틸 근거가 생깁니다. 사실로 뒷받침이 안 되니 사람 수로 채우는 셈입니다.
유유상종 심리학을 쓰면서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경향을 다뤘는데, 여기서는 그 모임이 특정한 기능을 합니다. 어긋난 예측을 함께 재해석해줄 사람들이 필요해집니다.
예측을 틀렸다고 인정할 수 있게 적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측을 할 때 형식을 정해두기로 했습니다. 네 줄입니다.
첫째 줄에 예측을 적습니다. 언제까지 무엇이 어떻게 될 거라고요. 방향만 적으면 나중에 시기 이야기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날짜를 넣습니다.
둘째 줄에 틀렸다고 볼 기준을 적습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면 내가 틀린 것으로 하겠다를 미리 정해둡니다. 나중에 정하면 그때 사정에 맞춰 기준이 움직입니다.
셋째 줄에 제가 이 예측에 걸어둔 것을 적습니다. 시간, 돈, 남에게 한 말이요. 걸어둔 게 많으면 나중에 인정하기 어려워진다는 걸 미리 알아두는 용도입니다.
넷째 줄은 그날 채웁니다. 맞았는지 틀렸는지만 적습니다. 설명은 안 적습니다. 설명 칸을 만들면 그 칸이 길어집니다.
해보니 둘째 줄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틀렸다고 볼 기준을 적으려면 제 예측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분명해져야 하는데, 막연한 예측은 애초에 기준을 못 만듭니다. 기준이 안 적히는 예측은 예측이 아니라 기분이었다는 걸 몇 번 겪고 알았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쓰면서 판단의 오류를 다룬 책을 정리했는데, 거기서 본 것과 이어집니다. 기억에 맡기면 판단의 이력이 남지 않습니다.
남의 믿음에 이 틀을 대기는 쉽습니다
조심할 대목을 적어두겠습니다.
이 개념은 남을 설명하는 데 쓰기가 아주 쉽습니다. 저 사람은 인지부조화 때문에 저런다고 정리하면 편합니다. 그리고 그 정리 자체는 확인이 안 됩니다. 프로이트의 해석에 붙던 문제와 같은 모양입니다.
또 하나는 이 책이 특정 집단을 관찰한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사례가 강렬해서 그 집단의 성격 문제로 읽히기 쉬운데, 페스팅거가 말한 조건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걸어둔 것이 많고 옆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은 일이 생깁니다.
제가 그 예측을 두고 말이 늘었을 때, 저를 말려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우리는 서로 설명을 보태줬습니다.
넷째 줄만 남기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예측을 적어두고 있습니다. 몇 개는 이미 틀린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틀린 것으로 적는 순간이 생각보다 덜 불편했습니다. 기준을 미리 정해뒀으니 논쟁할 게 없었습니다. 나중에 기준을 정하려고 하면 그때부터 협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틀린 예측을 몇 개 적어두니 다음 예측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제가 얼마나 맞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감각이 실제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방향은 맞았는데 시기가 이르다는 말은 이제 안 쓰려고 합니다. 그 문장은 설명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기준을 옮기는 장치였습니다.
이 글은 특정 신념이나 집단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고, 저는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한 권의 책에서 가져온 조건들을 제 판단 이력에 대본 기록으로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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