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앤테이크, 잘 주는 사람이 양쪽 끝에 다 있었습니다

애덤 그랜트가 기브앤테이크
좋은 정보는 함께 나눠요

삼십 분이면 될 것 같았습니다

제 일정에 없던 일을 하나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큰일도 아니었고 거절할 이유를 대기가 애매했거든요. 삼십 분이면 될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 게 한 주에 서너 개씩 쌓였습니다. 하나씩은 작은데 합치면 작지 않았습니다.

그 주에 정작 제 일은 밀렸습니다.

그리고 밀린 걸 시간 관리를 못 한 제 탓으로 적어뒀습니다.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은 셈입니다.

이상한 건 그러고도 다음 부탁을 또 받았다는 점입니다. 거절을 못 하는 게 문제라는 건 알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주는 쪽, 받는 쪽, 맞추는 쪽

애덤 그랜트가 쓴 기브앤테이크는 사람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나눕니다.

주는 쪽은 상대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봅니다. 받는 쪽은 자기가 무엇을 얻는지를 먼저 봅니다. 가운데에 있는 쪽은 주고받는 균형을 맞추려 합니다.

이 분류 자체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책이 눈에 띄는 건 결과를 들여다본 방식 쪽입니다.

성과가 낮은 쪽을 보면 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상되는 이야기입니다. 잘 주다 보면 자기 몫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성과가 높은 쪽을 봐도 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같은 부류가 양쪽 끝에 다 있었습니다.

그랜트는 이 분류를 성격이 다른 여러 직종의 자료에 적용해봅니다. 영업, 기술, 의료처럼 하는 일이 달라도 비슷한 모양이 나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갈리는 지점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러면 같은 방식을 쓰는데 왜 결과가 갈리는가가 질문이 됩니다.

책이 내놓는 설명은 이렇습니다. 남을 생각하는 것과 자기를 챙기는 것은 서로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는 따로 있는 축이고, 둘 다 높을 수도 있습니다.

손해 보는 쪽은 남을 생각하는 건 높은데 자기를 챙기는 게 낮습니다. 잘되는 쪽은 둘 다 높습니다. 도와주되 자기 일정과 한계를 같이 관리합니다.

그러니 문제는 주는 것 자체가 아니라 무한정 주는 것이었습니다.

책은 손해 보는 쪽이 빠지는 자리도 몇 가지로 정리합니다. 상대를 너무 쉽게 믿는 것, 사정을 이해하느라 자기 조건을 못 말하는 것, 그리고 자기 몫을 요구할 때만 유독 약해지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는 잘 나서는 사람이 자기 일에서는 못 하는 경우가 있다는 대목이 저한테 특히 걸렸습니다.

저한테는 이 구분이 제일 쓸모 있었습니다. 저는 거절을 못 하는 걸 고치려면 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도와주는 양이 아니라 제 쪽 기준이 비어 있는 게 문제였습니다.

링겔만 효과를 쓰면서 여럿이 모이면 각자가 덜 힘을 쓴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런 자리에서 한 사람이 계속 메우면 그 사람만 소모됩니다.

제가 한 건 주는 게 아니라 거절을 피한 거였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짚을 게 있습니다.

세 가지 분류는 이해하기 쉬운 대신 실제와 거리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자리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니까요. 가족 앞에서는 주는 쪽이고 회사에서는 균형을 맞추는 쪽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유형으로 굳히면 그 변화가 안 보입니다.

책이 성공한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같은 방식을 썼는데 안 된 사람들은 이야기에 잘 안 들어옵니다.

남을 돕는 게 결국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문장도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안 돌아오는 경우도 많고, 돌아올 걸 기대하고 주는 건 애초에 다른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 분류는 자기 진단으로 쓰기가 아주 쉽습니다. 나는 주는 쪽이라고 정해놓으면 실제로는 눈치를 보느라 승낙한 것까지 호의로 기록되거든요.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한 건 주는 게 아니라 거절을 피한 거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어떤 사람이 되라는 안내로 읽지 않았습니다. 주는 일에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답하지 않는 것만으로

읽고 나서 정한 규칙이 몇 개 있습니다. 태도가 아니라 절차로 만들어뒀습니다.

부탁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답하지 않습니다. 확인하고 알려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즉답을 피하는 것만으로 제 일정을 볼 시간이 생깁니다. 이게 제일 효과가 컸습니다.

거절을 사람에 대한 거절로 안 만듭니다. 지금은 어렵고 언제는 가능하다고 말하는 거요. 범위를 주면 거절이 조건 제시가 됩니다.

반복되는 부탁은 방식을 바꿉니다. 매번 제가 해주는 대신 하는 방법을 한 번 정리해서 넘깁니다. 처음에 시간이 더 들지만 그다음부터는 안 듭니다. 상대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고요.

제가 도운 걸 세지 않습니다. 세기 시작하면 돌려받을 걸 기다리게 되고, 안 돌아오면 억울해집니다. 세지 않으려면 애초에 감당할 만큼만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도와준 뒤에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를 봅니다. 한 번 도왔을 때 고맙다고 하고 끝나는 관계와, 도운 게 기본값이 되어 요구가 늘어나는 관계는 다릅니다.

뒤쪽은 대개 제가 선을 안 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유상종 심리학을 쓰면서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주고받는 방식도 비슷한 쪽이 남는 것 같습니다. 기준을 세우고 나니 오가는 사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억울해지는 일이 줄었습니다

제가 바꾼 건 태도가 아니라 규칙입니다.

전에는 잘 도와주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목표가 태도라서 조절할 지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 받거나 아예 냉정해지거나 둘 중 하나로 갔고요.

둘 다 오래 못 갔습니다. 다 받으면 밀리고, 냉정해지면 그것대로 불편했습니다. 규칙이 없으니 매번 그날 기분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얼마까지 가능한지를 미리 정해둡니다. 정해두면 그 안에서는 편하게 돕습니다. 오히려 덜 망설이게 됐고요.

그리고 알게 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한계가 없는 호의는 상대에게도 애매합니다. 어디까지 부탁해도 되는지를 상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 선을 제가 먼저 말합니다. 말하고 나면 그 안쪽은 아깝지 않았습니다.

억울해지는 일이 줄어든 게 제일 큰 변화였습니다.

관계나 조직을 진단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책을 읽고 제 생활에서 시험해본 규칙이며, 제게 맞았다는 것 이상은 아닙니다.

김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