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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이 하루를 삼켰습니다
파워포인트 작업을 진행하는데 준비한 것이 잘 안 된 날이 있었습니다.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고 기대만큼 안 나온 정도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제가 속으로 한 말은 이랬습니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문장은 짧은데 담긴 것이 많습니다. 늘이라고 했으니 앞으로도 그렇다는 뜻이고, 이런 식이라고 했으니 이 일만이 아니라는 뜻이고, 나는이라고 했으니 원인이 저한테 있다는 뜻입니다.
그 한 줄 뒤로 저녁이 통째로 넘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그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정작 안 된 일 자체는 두 시간이면 손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설명 양식, 같은 사건을 다르게 적는 법
이걸 정리해주는 개념이 설명 양식입니다. 마틴 셀리그만이 「낙관성 학습」에서 다룬 틀이고, 우리말로도 소개돼 있습니다.
셀리그만은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에게 설명하는 방식에 일정한 습관이 있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그 습관을 세 축으로 나눴습니다.
첫째는 영속성입니다. 이 일이 계속될 것으로 보는지, 이번에 그런 것으로 보는지입니다. 늘과 이번은 다른 단어입니다.
둘째는 만연성입니다. 이 일이 생활 전체에 걸친 문제로 보이는지, 이 영역에 한정된 문제로 보이는지입니다. 나는 일을 못한다와 이번 준비가 부족했다는 범위가 다릅니다.
셋째는 개인화입니다. 원인을 자기에게 두는지 상황에 두는지입니다. 셀리그만은 이 축을 두고 늘 남 탓을 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실제 자기 몫만큼만 가져오라는 쪽입니다.
세 축이 전부 앞쪽으로 쏠리면 작은 일 하나가 크게 자랍니다. 제가 그날 한 말이 딱 그 모양이었습니다.
셀리그만이 이 틀을 유용하게 만든 지점은 좋은 일에도 같은 축을 댄다는 데 있습니다. 잘된 일을 두고 이번에 운이 좋았다고 적는 사람과 내가 이런 걸 잘한다고 적는 사람은 다음 행동이 달라집니다. 저는 안 된 일에는 늘을 쓰고 잘된 일에는 이번을 쓰고 있었습니다. 같은 사건에 서로 다른 자를 대고 있었던 셈입니다.
셀리그만 본인이 이론을 고쳤습니다
이 대목은 적어두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셀리그만의 출발점은 1967년의 학습된 무기력 연구입니다. 피할 수 없는 자극을 겪은 동물이 나중에 피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도 시도하지 않더라는 관찰이었습니다. 무기력이 학습된다는 설명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십 년 뒤인 2016년에 셀리그만과 스티븐 마이어가 이 해석을 뒤집는 논문을 냈습니다. 신경과학 연구가 쌓이면서 방향이 반대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오래 이어지는 나쁜 일 앞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학습된 반응이 아니라 원래 기본값에 가깝습니다. 학습되는 것은 오히려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 쪽이었습니다.
자기 이론의 핵심을 반대로 적었다고 공개적으로 쓴 셈인데, 저는 이 대목 때문에 이 사람 이야기를 더 신뢰하게 됐습니다. 오십 년 동안 자기 이름이 붙어 있던 개념을 스스로 뒤집는 일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생활에 대보면 결론이 조금 달라집니다. 무기력을 걷어내는 문제가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쌓아가는 문제가 됩니다. 빼는 일과 더하는 일은 손이 가는 방향이 다릅니다. 저는 그동안 안 좋은 생각을 없애려고만 했지 되는 자리를 늘려볼 생각은 잘 안 했습니다.
회복 탄력성을 쓰면서 다룬 것과 이어지는 지점입니다. 되튀는 힘이 성격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면, 쌓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 축에 대보는 순서
그날 이후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저는 이렇게 해봅니다.
먼저 제가 속으로 한 문장을 그대로 적습니다. 다듬지 않고 적는 게 중요합니다. 다듬으면 원래 모양이 사라집니다. 저는 나는 늘 이런 식이다를 그대로 적었습니다.
그다음 세 축에 표시를 합니다. 늘인지 이번인지, 전부인지 이것만인지, 나인지 상황인지요. 세 개 중 몇 개가 앞쪽인지만 세면 됩니다.
그리고 앞쪽에 있는 것 하나만 골라서 사실인지 확인합니다. 전부를 고치려 들면 억지 위로가 되는데, 하나만 보면 확인이 됩니다. 저는 늘을 골랐습니다. 정말 늘이었는지 최근 몇 번을 떠올려봤더니 아니었습니다. 두 번은 괜찮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문장을 다시 씁니다. 좋은 말로 바꾸는 게 아니라 확인된 만큼만 적는 것입니다. 이번 준비는 시간이 모자랐다가 제가 다시 쓴 문장이었습니다.
이 순서에서 제일 중요한 칸은 세 번째입니다. 앞의 두 칸은 분류일 뿐이고, 실제로 문장을 흔드는 것은 확인입니다. 확인 없이 표시만 하면 내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구나에서 끝나는데, 그건 한 줄이 두 줄로 늘어난 것에 가깝습니다.
억지로 밝게 쓰지는 않으려 합니다
해보면서 조심하게 된 대목이 있습니다.
세 축을 전부 뒤쪽으로 밀어버리면 그건 다른 종류의 왜곡이 됩니다. 전부 상황 탓이고 이번뿐이고 이 영역만이라고 적으면 편하기는 한데, 고칠 자리도 같이 사라집니다.
셀리그만도 낙관을 사실 확인 없이 좋게 보는 태도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근거 없이 밝게 보는 것이 위험한 자리가 있다는 점도 함께 다룹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쓰면서 막연한 낙관이 오히려 사람을 무너뜨린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쪽과 같은 선에 있다고 봅니다. 확인하는 일이 먼저고 방향을 정하는 건 그다음입니다.
문장을 고치는 데 오 분이 듭니다
지금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한 줄이 먼저 나옵니다. 나오는 것 자체는 안 바뀌었습니다.
바뀐 것은 그 뒤입니다. 예전에는 그 문장을 저녁 내내 붙들고 있었고, 지금은 적어놓고 세 칸에 표시하는 데 오 분쯤 씁니다. 오 분을 쓰면 대개 문장이 한 단계 작아집니다.
작아진 문장이 기분을 곧바로 좋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손댈 수 있는 크기가 됩니다. 늘 이런 식인 사람은 고칠 게 없는데, 이번에 시간이 모자랐던 일은 다음에 시간을 더 잡으면 됩니다.
이 글은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고, 저는 그 분야의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무기력이나 가라앉은 기분이 일상을 어렵게 할 만큼 이어진다면 정신건강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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