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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 중 아홉이 만족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가전제품을 하나 고르느라 상세 설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설명 중간에 굵게 쓰인 문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용자 열 명 중 아홉이 만족했다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그러다 뒤집어 계산해봤습니다. 열 명 중 한 명은 만족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같은 자료입니다. 그런데 뒤집어 적은 쪽을 보니 느낌이 달랐습니다. 하나는 괜찮아 보였고 하나는 걸렸습니다.
바뀐 건 제 정보가 아니라 문장의 방향뿐이었는데요.
살린다와 죽는다로 나눠 물었습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구가 1981년에 나왔습니다.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한 것입니다.
가상의 상황을 줍니다. 어떤 질병이 돌아서 육백 명이 위험한 상태이고, 대응책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첫 번째 조건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A를 쓰면 이백 명이 삽니다. B를 쓰면 삼분의 일 확률로 육백 명이 다 살고, 삼분의 이 확률로 아무도 못 삽니다.
두 번째 조건에서는 같은 대응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C를 쓰면 사백 명이 죽습니다. D를 쓰면 삼분의 일 확률로 아무도 안 죽고, 삼분의 이 확률로 육백 명이 죽습니다.
여기서 A와 C는 완전히 같은 결과입니다. 육백 명 중 이백 명이 산다는 것과 사백 명이 죽는다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B와 D도 마찬가지입니다.
답이 정반대로 갈렸습니다
결과는 조건에 따라 뒤집혔습니다.
산다로 적은 첫 번째 조건에서는 확실한 쪽인 A를 고른 사람이 다수였습니다. 보고된 수치로는 열에 일곱을 넘었습니다.
죽는다로 적은 두 번째 조건에서는 도박에 가까운 D를 고른 사람이 다수였습니다. 이쪽도 비슷하게 큰 비율이었습니다.
같은 선택지인데 표현만 바꾸니 다수의 선택이 반대편으로 옮겨간 셈입니다.
설명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이득으로 읽히는 상황에서는 확실한 쪽을 고르고, 손실로 읽히는 상황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쪽으로 기웁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실인지는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로 정해집니다. 산다로 쓰면 영에서 올라가는 그림이 되고, 죽는다로 쓰면 육백에서 깎여나가는 그림이 됩니다.
부정성 편향을 쓰면서 나쁜 쪽이 더 무겁게 잡힌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프레이밍은 무엇을 나쁜 쪽으로 보이게 만들지를 문장이 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안다고 안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곤란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 실험은 참가자가 통계를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의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비슷한 실험에서도 같은 방향의 차이가 보고됐습니다.
저도 이 개념을 알고 나서 덜 걸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면 뒤집어볼 수는 있는데, 뒤집어보기 전까지는 앞의 문장이 이미 느낌을 만들어놓습니다.
그리고 뒤집어보는 일 자체를 자주 잊습니다. 설명이 매끄러우면 멈출 이유가 안 생기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색하게 쓰인 문장에서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지식으로 막는 게 아니라 절차로 막아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매번 떠올리는 건 안 되고, 뒤집어 적는 걸 습관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할인 금액과 남는 금액은 같은 돈입니다
생활에서 이게 붙는 자리가 꽤 많았습니다.
제품 설명에 붙는 비율이 대표적입니다. 성공률 구십오 퍼센트와 실패율 오 퍼센트는 같은 수치인데 남는 인상이 다릅니다. 파는 쪽은 당연히 좋아 보이는 방향으로 씁니다. 거짓말이 아니라서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돈 쪽도 그렇습니다. 할인 금액으로 적을 때와 남는 금액으로 적을 때가 다릅니다. 얼마를 아낀다는 문장은 이득 쪽이고, 얼마를 낸다는 문장은 손실 쪽입니다.
앵커링 효과와 같이 오면 특히 셉니다. 먼저 기준을 하나 던져놓고, 그 기준에서 깎이는 쪽으로 설명하면 두 가지가 같이 작동합니다.
시간에도 붙습니다. 이 일은 삼십 분이면 끝난다와 이 일은 삼십 분이나 걸린다는 같은 길이를 가리키는데, 시작하는 마음이 다릅니다. 저는 미루는 일에 유독 뒤쪽 문장을 쓰고 있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비슷합니다. 아직 절반 남았다와 벌써 절반 썼다는 같은 상태를 가리키는데, 듣는 쪽 기분이 다릅니다. 제가 누구에게 소식을 전할 때도 저도 모르게 한쪽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뒤집어 적어보는 것 하나
제가 쓰는 건 사실상 하나입니다. 숫자가 나오면 반대편 숫자를 적어봅니다.
구십오 퍼센트라고 쓰여 있으면 옆에 오 퍼센트를 적습니다. 열에 아홉이면 열에 하나를 적습니다. 적는 데 몇 초 안 걸리는데, 적어놓으면 아까와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건 의심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양쪽을 다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쪽만 적힌 자료는 반쪽짜리여서요.
다르게 보였다고 해서 반드시 안 사는 건 아닙니다. 오 퍼센트가 감당할 만한 값이면 사면 됩니다. 중요한 건 그걸 보고 정했느냐입니다.
두 번째로 쓰는 건 기준점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 설명이 어디를 영으로 잡고 있는지요. 할인 전 가격을 영으로 잡으면 지금이 이득이고, 제 지갑을 영으로 잡으면 지금이 지출입니다. 파는 쪽이 정해준 기준점을 그대로 쓰면 그쪽 문장 안에서 판단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제가 남에게 말할 때입니다. 저도 한쪽으로 말하고 있는지 봅니다. 특히 제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골랐을 때가 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닌데 정직한 것도 아닙니다.
잘 쓰인 설명일수록 한 번 더 봅니다
제가 알게 된 건 하나입니다. 숫자를 보기 전에 문장이 먼저 도착한다는 것.
계산은 나중에 하고 느낌은 먼저 생깁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계산이 끝난 뒤에도 잘 안 없어집니다.
제가 어느 방향으로 적었는지도 대개 나중에야 보입니다. 쓸 때는 그게 제일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져서요.
그래서 요즘은 잘 쓰인 설명을 보면 한 번 더 봅니다.
잘 쓰였다는 건 읽기 편하게 정리됐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정리됐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판단은 읽는 분의 몫입니다. 이 글은 특정 상품이나 계약을 권하거나 말리지 않으며, 쓴 사람도 상담이나 금융 분야의 전문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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